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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5 23:02

[미연시] 3. 대사관 인터뷰 Life in campus2016.03.05 23:02

영어 실력 입증 자료(English Proficiency Certificate)를 위한 시험을 마치고 나서 DS-2019 작성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각종 일처리가 무지무지하게 느리게 진행되는 곳이라 시간이 꽤 걸렸다. 연구년 선정이 7월. 미국 대학에 초청장 요청해서 관련 서류 오간 게 8월. 이때 EPC 때문에 연구년 대학을 다른 곳으로 바꾸나 고민하느라 몇 주 보내고, 필기 시험 준비로 영어 공부(...) 좀 하느라 또 몇 주. 그래서 필기 시험을 치른 것은 9월 셋째 주였다. 연구년을 2016년 2월에 시작할 계획이어서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뷰가 한 달쯤 늦어져서 DS-2019 작성이 11월에야 시작되는 바람에 시간이 좀 빠듯해졌다. 그나마 친구가 직접 관련 사무실에 뛰어다니며 일처리 해 준 덕에 11월초에 가능했지, 그냥 뒀으면 11월 말에 있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때문에 아마 12월로 넘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제출 서류 가운데 의료 보험이 있어서 비자 업무 대행 업체에 이야기하여 보험에 가입하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어떤 대학에서는 특정 업체에만 의료 보험에 가입하도록 한다는데, 그 보험료가 1500만원쯤 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내가 가입한 곳은 방문 교수들을 오래 상대해 온 곳이이서 그냥 다 맡기면 알아서 해 주었다. 사실 미국에 도착한 다음에 보니, 보험 관련 서류에 문제 아닌 문제(?)가 있었다. 미국 대학 쪽 담당 직원 말로는 본인 부담금(deductible)이 $100 이하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 않아서 서류 처리를 해 줄 수 없다면서 이 내역에 대해 서류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보험 업체가 공신력 있는 곳인지 입증하는 자료도 제출하라고 한다. 부랴부랴 한국 쪽 에이전시에 연락했더니 바로 서류 보내줘서 처리할 수 있었다. 사실 본인 부담금 없다는 내용이 있는 데도, 자기네 양식과 딱 맞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관련 서류들이 오고간 다음 절차는 미국 대사관 인터뷰이다. 11월초에 서둘러 서류 업무를 시작했는데도 DS-2019가 12월 중순쯤에 도착한다고 해서 조마조마했다. 대사관 인터뷰를 예약하면 평균 3주 후에 진행된다고 하니, 12월 중순에 도착하는 서류를 들고 접수하면 연말에 출국하는 사람이 많아 1월 중순 이후에야 인터뷰를 하게 된다. 그런데 출국 비행기를 1월 28일로 미리 사두었으니 큰일이었다. 돈 낼 테니 특급으로 보내달라고 해 볼까 했으나, 원래 그런 서류는 특급으로 보내준다고 해서 그럴 필요는 없었다.


다행히 비자 업무 대행 업체가 이럴 때는 도움이 되었다. 미리 인터뷰 접수를 해놓고 DS-2019 제출을 나중에 하는 방법이 있었다. 그래서 DS-2019가 도착한 그 주에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미국 대사관 인터뷰를 위해 작성해야 하는 DS-160 문서도 비자 업무 대행 업체에서 다 입력해 주어서 편하기는 했는데, 접수 완료하기 전에 열람해 보니 잘못 쓴 부분이 너무 많아 하나하나 다 고쳐야 했다. 그래도 처음부터 다 써 넣기에는 모르는 용어도 많고 해서, 잘못 쓴 부분이 있기는 해도 도움이 되기는 하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2015년 연말에 업무가 폭주해서 그랬다나.


대사관 인터뷰는 만 12세 이상만 하면 된다고 해서 애들은 두고 아내와 둘만 갈 생각이었으나, "서류 상 아이들"보다는 "눈 앞에 있는 아이들"이 비자 발급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애들을 다 데려갔다. 서울에서 보험 담당자 만나 보험 서류 사인하고 인터뷰 주의 사항 듣고 대사관으로 향했다. 인터뷰 떨어질까봐 걱정된다고 했더니, 예전에는 그런 일이 종종 있었지만 EPC 덕분에 요즘은 거의 안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EPC를 받았으면 영어에는 별 문제 없다고 믿어주는 듯. 연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엄청 많았고, 한참을 기다렸다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다리면서 보니 비자 발급 거절당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영어를 글로 배운(...) 나는 역시 듣는 게 약해서 잘 못 알아듣고 엉뚱한 소리도 하고 답도 제대로 못하는 사고를 좀 쳤지만 다행히 통과. 탈락하면 여권 바로 돌려주고 통과하면 여권을 가져가니까 탈락 여부는 그 자리에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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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발급과 관련하여 각종 업무를 대행해 주는 업체들이 있다. 추가 비용도 거의 없는데,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봉사심이 넘쳐서 그런 것은 아니고, 대신 의료 보험에 가입을 해 주어야 한다. 이 업체에 물어 보니 영어 실력 입증 자료 때문에 시험을 보는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화상 인터뷰 정도지 필기까지 보는 곳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냥 시골 학교이다 보니 규정대로 하는 듯. 참고로, 비자 발급 업무 대행 업체에서는 화상 인터뷰를 위한 연습도 시켜준다고 한다. 연구계획서를 토대로 원어민이 1대1로 지도하는 것. 물론 비용이 좀 든다. 나는 돈도 없고 서울까지 왔다갔다 하기 번거로워 인터뷰 지도는 받지 않았다.


토플 같은 시험은 내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시험이 아니니 그냥 학교 자체 시험 보겠다고 했다. 시험 내용은 온라인으로 90분 동안 에세이 네 편. 한 편에 20분 남짓이니 구상부터 타이핑까지 생각하면 꽤 빡빡하다. 필기 시험이 끝나고 곧 인터뷰 일정을 잡는다는데, 나는 어찌된 일이지 3주 동안 연락이 없었다. 메일로 물어 봐도 기다리라고만 하고.


3주만에 연락이 왔다. 무슨 사이트 주소를 하나 알려주며 거기서 인터뷰를 하라고 한다. 보아하니 14시간 시차가 나는 한국과 인터뷰 일정을 잡기가 어려워서 온라인으로 동영상을 올리게 하는 인터뷰 전문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으로 방침이 바뀌어서 그 처리에 시간이 많이 걸린 것 같다. 아마 앞으로 이런 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대학이 많아질 듯하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온라인 인터뷰 사이트에는 질문이 미리 나와 있어서 그걸 보고 답변을 미리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직접 화상으로 보면서 질문을 듣고 답하는 것이었으면 아무래도 듣기와 말하기가 부담스러웠을 텐데, 다행히 질문이 미리 나와 있으니 답변도 미리 작성해서 여러 번 읽고 연습할 수 있었다. 인터뷰 사이트에 등록하고 마이크 조정, 카메라 위치 조정 등등을 한 다음 인터뷰를 시작하면, 화면에 웬 여자분이 나와서 "Describe your research."라고 말하고 화면에 3, 2, 1이 나온 다음 내가 말하는 장면이 녹화된다. 나는 그냥 모니터 뒤에 대본 세워 놓고 읽었다. 나중에 녹화된 영상을 보니 대본 보느라 시선 처리가 엉망이었는데, 별 문제 되지 않은 것 같다. 답변 시간은 질문 당 2분 정도였다. 질문은 총 다섯 개였고, 비슷비슷한 질문에 다른 내용으로 2분씩 답변을 채우려니 대본 길게 쓰는 게 제일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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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부터 1년 동안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내게 되었다. 보통 대학의 연구년은 6년을 근무하고 7년째 되는 해에 1년 동안 주는 유급 휴가라 할 수 있다. 요즘은 3년 근무하고 6개월짜리 연구년을 보내주는 곳도 있다. 나는 올해가 8년차로, 원래는 작년에 연구년을 갈 수도 있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 해 늦게 신청하여 2016년에 연구년을 나가게 되었다. 사실, 설마 연구년 보낼줄까 싶었는데 덜컥 되고 나니 고민이 많았다. 그래도 요즘 어떤 대학에서는 취업 실적 없으면 연구년 신청조차 못한다고 하니, 기회 왔을 때 가야겠다 싶어 부랴부랴 준비하였다. 이 과정에서 너무나 우여곡절이 많아 미국에 연구년을 가려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간단히 몇 가지 기록을 남겨 두려 한다.


연구년을 가려면 먼저 어느 대학으로 갈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연구년을 신청할 때 연구계획서를 제출해야 하고, 여기에 어느 대학에서 어떤 연구를 할 것인지 적어야 한다. "연구계획서"에서 알 수 있듯이, 옛날에는 쉬다 오라고 "안식년"이었지만, 요즘은 연구하고 와서 결과 제출하라고 "연구년"이다.


가장 좋기로야 전공 분야 대가를 찾아가 한 수 배우고 오는 것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일단 좀 쉬고 싶었다. 우리 학교는 영재원 수업과 교육대학원 수업 때문에 학기 중에는 토요일에도 거의 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가를 찾아가는 것보다는 그냥 나 혼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마무리 못하고 있는 논문도 끝내 보고. 게다가, 미국에 학회로 며칠 가보기는 했지만 장기간 머무려면 처리할 일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도와줄 사람이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별로 유명하지 않은 시골 학교지만, 학부 때 동기가 교수로 있는 East Carolina Uiversity에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가 한국에 왔을 때 연구년 가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허락해 줘서 이 학교로 가기로 하였다. 내 짧은 영어로 미국 교수와 토론하는 것보다는 이 친구와 모국어로 토론하는 게 훨씬 생산적일 것 같기도 하였고.


미국에 돌아간 친구가 학과에 얘기하니 학과장도 OK. 다만 그쪽 학교에서 재정 지원은 해 줄 수 없다고 한다. 그거야 애초에 기대 않던 일이니 문제도 아니다. 이렇게 해서 2014년에 연구년을 신청하여 2015년에 갈 수 있기를 기대하였지만 신청 불발. 어차피 요즘 7년차 교수를 연구년 보내주는 대학이 많지 않다. 그래서 친구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2015년에 다시 신청해 보겠다고 했고, 친구는 언제든지 연구년 결정되면 연락 달라고 한다. 이래서 친구에게 부탁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2015년 7월에 연구년에 선정되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험난한 과정이었다. 연구년을 가려면 미국 쪽 대학에서 초청장을 받고 DS-2019라는 문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걸 가지고 미국 대사관 인터뷰를 거쳐 J1 비자를 받는다. 동반 가족은 J2 비자를 받고. 그런데 2015년 1월 5일부터 미국 연방 규정이 바뀌어서, J1 비자를 받기 위해 DS-2019를 발급 받으려면 영어 실력 입증 자료(English Proficeiency Certificate)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시험을 봐야 하는지 보니, TOEFL IBT, IELTS, SAT Critical Reading, ACT 가운데 하나를 보거나 자기네 학교에서 출제하는 Placement test를 치러야 한단다. 그러고 나서 화상 인터뷰까지.


가뜩이나 짧은 영어 실력에 이런 시험까지 쳐야 한다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이 소식을 다른 교수들에게 전하니 아주 난리가 났다. 아마도 영어 실력이 안 되면서 유학 오는 학생들을 걸러내려는 의도 같은데, 방문교수까지 같은 규정으로 처리해서 이런 문제가 생겼다. 몇 년 지나면 방문교수는 예외로 처리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곤란한 상황이 되었는데, 알고 보니 많은 대학에서는 초청하는 교수가 사인 하나 해주는 걸로 EPC를 대체하고 있었다. 특히 큰 대학의 경우, 오가는 방문교수가 많다 보니 일일이 시험을 치르기 번거로워서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가 가려는 대학은 유명하지 않은 시골 학교여서인지 무조건 시험을 보라고 한다.


고민하다가 다른 대학에 있는 사람들에게 연구년을 갈 수 있을지 물어보았으나, EPC를 대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들 한다. 1월 5일에 발효된 규정이니 모르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고민 끝에 그냥 원래대로 ECU에 가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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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1 09:06

2016 병신년 복면산 Puzzle2016.01.0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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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5 23:40

Happy Newton-Mas! Puzzle2015.12.25 23:40

12월 25일 뉴턴의 생일을 기념하여 복면산 문제 하나.


APPLE + APPLE + APPLE = NEWTON


뉴턴 시대에는 영국에서 그레고리력이 아닌 율리우스력을 쓰고 있었으므로, 그레고리력으로는 1642년 12월 25일이 아니라 1643년 1월 4일이 뉴턴의 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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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6 16:08

신기한 종이 퍼즐 1단계 Puzzle2015.12.16 16:08


        



블로그 퍼즐 박물관(Puzzler Gang's Puzzle Museum)을 운영 중이신 퍼즐러갱 님께서 종이로 할 수 있는 퍼즐들을 모아 책을 내셨다. 알라딘 온라인 서점 주소는 여기.


뒤쪽에 스티커 형식으로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자료(DIY 실물 퍼즐)까지 있어서 아주 좋다. 하루에 하나씩 해도 한 달 동안 아이들과 즐겁게 놀 수 있을 것 같다. 성질 급한 우리집 애들은 하루만에 다 뜯어서 만들어버릴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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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8 20:34

대학수학 맛보기 - 부정적분 Math2015.12.08 20:34

모처에 "대학수학 맛보기"라는 제목으로 실었던 글.


꼬꼬마 시절, 미분과 적분은 마술과 같은 환상적인 세계였다. 특히, 주어진 함수의 부정적분을 온갖 예술적인 기교로 구하는 것은 정말로 매혹적이었다. 아름다운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치환적분, 부분적분, 부분분수 등등 적분 기교 하나하나가 다 멋있었고, 이런 기교들로 만들어낸 결과는 아름다운 조각품이었다.


적당한 함수를 하나 만들고, 요리조리 궁리하여 그 부정적분을 구해내는 것은 흥미로운 놀이였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부정적분을 구하지 못해 애태운 함수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y=e^{-x^2}\)과 같은 함수. 정규분포의 확률밀도 함수를 구성하는 이 함수는 무슨 짓을 해도 부정적분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연속함수이니 부정적분이 존재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도무지 그 모양을 알 수가 없었다. 요즘 같으면 인터넷으로 뒤져 보면 1초만에 알 수 있겠지만, 저 시대에는 인터넷도 없었고, 수학 관련 책도 많지 않았다.


부정적분을 구하기 어려웠던 또 하나의 함수는 \(y=x^x\)이었다. 이 함수는 도함수를 구할 때 로그 미분을 이용해서 흥미로웠는데, 이런 기교도 부정적분을 구하는 데는 아무 도움이 안 되었다. 사실 \(e^{-x^2}\)의 부정적분이 하나의 식으로 표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게 가능했다면, 정규분포표 같은 걸 만들 필요가 없었을 테니. 정규분포를 이용하여 확률을 계산한 결과를 표로 만들었고, 그 표에 적분 기호 없이 부정적분이 적혀 있지 않다는 것은 부정적분이 간단히 표현될 리가 없다는 뜻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835년에 리우빌(J. Liouville)이 이 사실을 증명하였다. 그렇다면 \(x^x\)은?


짧은 지식으로는 도저히 \(\int x^x dx\)를 구할 수 없었다. 아마 수학과를 가야 이런 부정적분을 구할 수 있겠거니 생각하였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런 부정적분에 대해 이해하려면 수학을 전공해야 했다는 점에서 반이 맞았지만, 이런 부정적분을 다항식, 분수식, 지수함수, 로그함수, 삼각함수, 역삼각함수 등등을 조합하여 나타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는 반이 틀린 셈이었다.

논의를 간단히 하기 위해 모든 함수는 복소수에서 정의되는 복소함수로 생각하자. 이렇게 하면

\[\cos x = \frac{e^{ix}+e^{-ix}}{2}, \qquad \sin x = \frac{e^{ix}-e^{-ix}}{2}\] 이 되어, 삼각함수와 역삼각함수를 지수함수와 로그함수를 이용하여 나타낼 수 있으므로 편리하다. 이제 지수함수와 로그함수에 사칙계산과 거듭제곱근을 적용하여 표현되는 함수를 “초등함수”라 부르자. 그러면 문제는 \(e^{-x^2}\)이나 \(x^x\)의 부정적분을 초등함수로 나타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된다.

아무리 복잡한 초등함수라도 미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함수들의 집합 \(S\)에 속하는 원소 \(f(x)\)가 \(S\)의 원소들을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어서 표현된다면 그 도함수 \(f'(x)\)도 \(S\)의 원소들을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어서 표현된다. 예를 들어, 유리식 전체의 집합을 생각하면, 이 집합은 사칙계산에 대해 닫혀 있고, 각 원소의 도함수들도 원소로 가지고 있다. 사칙계산에 대해 닫혀 있는 집합을 체(field)라 부른다. 유리식 전체의 집합은 미분에 대해 닫혀 있는 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일반화하여 “미분체(differential field)”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자.


정의. (미분체) 체 \(F\)가 단항연산 \(':F \to F, (a+b)' = a'+b', (ab)' = a'b + ab'\)을 가지고 있을 때, 체 \(F\)를 미분체(differential field)라 부른다.


물론 단항연산 \('\)은 우리가 잘 아는 미분을 뜻하지만, 극한을 이용하여 구체적으로 미분을 정의하는 대신 미분이 가지는 성질인 선형성(linearity)과 라이프니츠 규칙(Leibniz' rule)만을 가정하면 미분체들의 대수적 구조를 파악하기에 편리하다.


미분체의 예로는 유리식의 집합 \(\mathbb{C}(x)\)를 들 수 있다. 유리식은 사칙계산에 대해 닫혀 있고, 유리식을 미분한 결과 역시 유리식이기 때문이다. 유리식의 집합만이 미분체인 것은 아니다. 무리함수 \(y=\sqrt{x}\)는 유리식이 아니므로, 유리식과 \(y=\sqrt{x}\)에 사칙계산을 적용하여 만들 수 있는 모든 함수들의 집합은 유리식의 집합보다 더 큰 미분체가 된다. 여기서, 유리식의 집합에 문자 \(t\)를 추가하여 보통의 문자처럼 다루되, \(t^2\)이 나타나면 \(x\)로 바꾼다고 규칙을 정하면 \(y=\sqrt{x}\)를 직접 다루지 않고 대수적인 표현으로 미분체를 확대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실수를 복소수로 확장할 때, \(i\)를 문자처럼 다루되 \(i^2\)이 나타나면 \(-1\)로 바꾼다는 것과 비슷하다.


유리식에 \(y=\sqrt{x}\)과 같은 무리함수를 추가하여 확대된 미분체는 대수적 확대체(algebraic extension field)로 불린다. 추가되는 요소가 다항방정식의 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대수적 확대체를 이런 식으로 확대한 확대체 또한 대수적 확대체이다.


유리식이나 무리함수로 표현되지 않는 초등함수로 \(y=\ln x\)를 생각할 수 있다. 이런 함수를 추가하여 미분체 \(F\)를 확대하려면, \(F\)에 문자 \(t\)를 추가하고, 적당한 \(s \in F\)에 대해 \(t' = \frac{s'}{s}\)이 성립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확대한 체를 로그 확대체(logarithmic extension field)라 부른다. 또, 지수함수 \(y=e^x\)를 추가하여 미분체를 확대하려면, 적당한 \(s \in F\)에 대해 \(t' = ts\)가 되는 \(t\)를 추가하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확대한 체는 지수함수 확대체(exponential extension field)라 부른다.


이런 식으로 확대체를 구성한다고 생각하면, 함수 \(f(x)\)의 부정적분을 초등함수로 나타낸다는 것은, 복소수체 \(\mathbb{C}\)에서 출발하여 유리식체를 만들고, 적당한 로그함수와 지수함수를 추가하여 확대체를 만드는 과정을 \(f(x)\)가 원소로 나타낼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떤 대상이 가지는 성질을 규명하기 위하여 그 대상을 원소로 가지는 확대체를 구성하는 착상은 갈루아(Évariste Galois)가 다항방정식의 근을 대수적으로 구할 수 있는지 판정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시초였다. 함수의 부정적분이 초등함수로 표현되는지 판정하기 위해 확대체를 구성하는 착상은 갈루아 이론을 미분방정식에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분야를 미분 갈루아 이론(differential Galois theory)이라 부른다. 아래 그림에서 왼쪽은 \(x^{16}=1\)의 해를 찾는 과정에 해당하고, 오른쪽은 \(y=e^{\sqrt{x^2-2}}\)의 도함수를 찾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초등함수로 표현되는 부정적분을 추가하여 만들어지는 확대체를 특별히 초등 미분 확대체(elementary differential extension field)라 하자.



이제 어떤 함수의 부정적분을 초등함수로 나타낼 수 있다면, 다음 정리에서처럼 특별한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이것은 로젠릭트(M. Rosenlicht)의 논문 Liouville's Theorem on Functions with Elementary integral. Pacific Journal of Mathematics 24 (1): 153-161. 1968.에 실린 결과이다.


정리. 미분체 \(F\)와 \(G\)에 대하여, \(y \in G\)의 도함수 \(\alpha = y'\)이 \(F\)의 원소이며, \(G\)가 초등 미분 확대체라면, 적당한 상수 \(c_1, c_2, \dots, c_n \in \mathbb{C}\)와 함수 \(u_1, u_2, \dots, u_n, v \in F\)에 대하여

\[\alpha =c_1 \frac{u_1'}{u_1} + c_2 \frac{u_2'}{u_2} + \dots + c_n \frac{u_n'}{u_n} + v'\]

이 성립한다.


증명. 이 코너에 할당된 공간이 부족하여 생략.


이 정리로부터 다음과 같이 사용하기 쉬운 판정법을 얻을 수 있다. 만약 \(f(x)\)와 \(g(x)\)가 미분체 \(F\)의 원소이고 함수 \(f(x)e^{g(x)}\)의 부정적분을 초등함수로 나타낼 수 있다면, 적당한 \(w(x) \in F\)가 있어서

\[f(x) = w(x) + w'(x)g'(x)\]

가 성립해야 한다.


정규분포에 나타나는 함수 \(e^{-x^2}\)의 경우, \(f(x)=1\)이고 \(g(x)=-x^2\)이므로

\[1 = w'(x)-2xw(x)\]

를 만족하는 유리식 \(w(x)\)가 존재하는지 확인하면 된다. 위 미분방정식의 해를 구하면 \(w(x)\)는 다시 \(e^{-x^2}\)의 부정적분이 된다. 명백히 \(w(x)\)는 유리식이 아니므로, \(\int e^{-x^2} dx\)는 초등함수로 나타낼 수 없다.


함수 \(x^x\)도 마찬가지이다. 이 경우 \(x^x = 1 \times e^{x \ln x}\)이므로 \(f(x)=1\)이고 \(g(x)=x\ln x\)이다. 따라서

\[1 = w'(x) + w(x)(\ln x+1)\]을 만족하는 \(w(x)\)가 \(\mathbb{C}(x,\ln x)\)에 존재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x\)와 \(\ln x\)에 대한 두 다항식 \(P = P(x,\ln x)\)와 \(Q=Q(x,\ln x)\)에 대하여 \(w(x) = P/Q\)라 하면, 위의 미분방정식은

\[\begin{align*}1&=\frac{P'Q-PQ'}{Q^2} + \frac{P}{Q}(\ln x+1) \\ Q^2 &= P'Q - PQ' + PQ(\ln x+1)\end{align*}\]

이 되므로 \(Q\)가 \(Q'\)을 나누려면 \(Q\)는 상수일 수밖에 없다. \(Q(x)=1\)로 두어도 되므로, 결국\[1 = P' + P(\ln x+1)\]

을 만족하는 다항식 \(P\)가 존재하는지 확인하여야 한다. \(P = \sum_{i=0}^n P_i(x)(\ln x)^i\)이고 \(P_i(x) \in \mathbb{C}[x]\)라 하면, 위 미분방정식에서 \(P_n(x)(\ln x)^{n+1}\)이 소거되지 않고 남으므로 미분방정식을 만족하는 \(P\)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int x^x dx\)는 초등함수로 나타낼 수 없다.


수학을 공부하면서, 수학자들의 놀라운 착상에 감탄하는 일이 많은데, 미분 갈루아 이론도 그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다항방정식과 미분방정식은 전혀 다른 연구 대상인데도 공통된 특성을 파악하여 비슷한 도구를 만들어내다니, 역시 수학자들의 통찰력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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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1 13:49

수학자 Max Zorn Math2015.11.11 13:49

며칠 전 이임학 교수에 대한 기사가 소개되면서 수학자 Max Zorn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었다. 

수학 전공자라면 Zorn's lemma로 잊을 수 없는 이름인데, 어떤 분인지 잘 알려져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소개하는 글. 원문은 Chicago Tribune 1993년 3월 11일자 칼럼이다.

Max Zorn의 생애를 보면, 요즘 사회 분위기가 마치 1930년대 나치 정권 치하의 독일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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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ath Wizard, Hero To His Family

가족에게 영웅이었던 수학의 마법사

March 11, 1993 | By Eric Zorn.

1993년 3월 11일 에릭 존

I don't pretend to understand Zorn's Lemma-it is a statement of principle in higher mathematical set theory, and I never got smart enough to take a class where it came in handy.

초른의 보조정리(Zorn’s Lemma)를 아는 척하지 않겠다. 그것은 더 수준 높은 수학적 집합론에서 어떤 원리를 표현한 것이고, 나는 결코 그 보조정리가 쓸모있는 수업을 들을 만큼 똑똑하지도 않았다.

And although it's not as common or useful as, say, the Pythagorean Theorem, it does appear in many standard dictionaries as well as in the title of the 1969 popular reference book "Whose What? Aaron's Beard to Zorn's Lemma." Math types always please me when they ask, "Are you related to the Zorn?"

이 보조정리는, 예컨대 피타고라스 정리만큼 흔하거나 유용하지는 않지만, 1969년의 참고 서적 제목인 “누구의 무엇? 아론(Aaron)의 수염(옮긴이: 식물의 한 종류)부터 초른(Zorn)의 보조정리까지”에서와 같이 많은 표준적인 사전에 등장하였다. 수학을 잘 아는 사람들이 이런 질문으로 나를 기쁘게 했다. “초른이랑 관련 있으세요?”

I am. My grandfather, Max, published the lemma in 1935. I had occasion to think a lot about the man and his lemma Monday afternoon when, in response to an urgent call from my father, I drove to Bloomington, Ind., hoping to get to his bedside before he died.

그렇다. 나의 할아버지인 맥스 존(막스 초른 Max Zorn)이 저 보조정리를 1935년에 출판하였다. 월요일 오후, 아버지에게서 온 긴급 전화 때문에 인디애나 주 블루밍턴으로 차를 몰고 가면서, 나는 할아버지와 그 보조정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기회를 가졌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임종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He was 86 and had suffered unexpected and severe congestive heart failure. His lungs were filling with fluid, Dad said, his heart was nearly dead and nothing could or would be done to save him. His doctor had given him between three hours and two days to live.

할아버지는 86세였고 예상치 못한 심각한 울혈성 심부전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폐는 물이 찼고, 아버지 말씀으로는 할아버지의 심장이 거의 죽었고 할아버지를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었다. 의사는 할아버지에게 세 시간에서 이틀 정도 살 수 있다고 했다.

It takes roughly five hours to drive from here to Bloomington, and on the way I thought back on what he had accomplished. I was always proud to be his only grandson, but what I was proudest of was not that he had written the lemma, but that he had fought against the emerging Nazi party in his native Germany before World War II.

여기서 블루밍턴까지는 대충 다섯 시간 정도 걸렸고, 가는 길에 나는 할아버지가 이루었던 것에 대해 회상하였다. 나는 언제나 할아버지의 손자인 게 자랑스러웠지만, 내가 가장 자랑스러웠던 것은 할아버지가 그 보조정리를 썼다는 게 아니라 제이 차 세계대전 전에 할아버지의 고국인 독일에서 부상하던 나치당에 맞서 싸웠다는 것이었다.

He spoke with a raspy, airy voice most of his life. Few people knew why, because he only told the story after significant prodding, but he talked that way because pro-Hitler thugs who objected to his politics had battered his throat in a 1933 street fight.

할아버지는 거의 평생 동안 바람 새는 듯한 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심각한 부상 이후 이야기만 하셨기 때문에 이유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할아버지 목소리가 그랬던 이유는 할아버지의 정치적 견해에 반대하는, 히틀러를 지지하는 폭력배들이 1933년에 길거리에서 할아버지의 목을 가격했기 때문이었다.

He and his wife, Alice, and their young son, my father, fled to the United States in 1934.

할아버지와 할머니 앨리스는 어린 아들, 그러니까 내 아버지를 데리고 1934년에 미국으로 오셨다.

He was not yet 30 when he made his first and, as it turned out, only lasting mark on his profession. Zorn's Lemma gave him international recognition, but ended up haunting him, as early glory so often does.

할아버지가 자신의 첫번째 업적이며 할아버지의 경력에서 영원히 남게 될 유일한 업적을 이루었을 때 서른이 되지 않았다. 초른의 보조정리는 할아버지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 주었지만, 이른 영광이 늘 그러하듯, 그 보조정리는 할아버지를 끝까지 옭아매었다.

Even after his retirement from the Indiana University mathematics department in 1972, he continued to write in his notebooks and go to his office every day hoping, it seemed, to come up with something equally lasting or more profound.

심지어 할아버지는 1972년에 인디애나 대학 수학과에서 퇴직한 이후로도, 계속해서 연구 노트를 쓰며 매일 연구실로 출근하셨다. 그 보조정리에 버금 가게 영원하거나 그만큼 심오한 결과를 얻기를 바라면서.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I won the race to Bloomington. Max (I always called him Opa) was conscious when I arrived shortly after 9 p.m., and greeted me with a surprisingly strong handshake. He asked, in a voice muffled by the oxygen mask through which he was drawing horrible, wet breaths, if my 3-year-old son was able to dress himself yet.

블루밍턴까지의 경주는 내가 이겼다. 저녁 9시 직후 내가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는 아직 의식이 있었고 놀랍게도 힘센 악수로 나에게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는 끔찍하고 축축한 호흡을 의지하고 있는 산소 마스크 때문에 작아진 소리로, 세 살인 내 아들이 이제 혼자서 옷을 입을 수 있냐고 물었다.

Small talk. Earlier that day he'd spoken to his doctor and to the family about the gravity of his condition and the impossibility of recovery. There was no hope for a miracle here, no doubt of the outcome. So he and my grandmother had taken time to embrace and reminisce about the old days when they had been university students together in Germany.

대화는 길지 않았다. 이미 이전에 할아버지는 의사와 가족들에게 자신의 상태가 위중하며 회복이 불가능함을 이야기하였다. 기적이 일어날 희망은 없으며, 결과를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포옹하며 두 분이 독일에서 함께 대학을 다녔던 옛날을 회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After I had been there a while and the room turned quiet, he said to all of us, "Thank you," then took a breath, "for coming to see me off," he took another breath, "in a certain way." He shook my hand again and gave the stiff, half-wave salute that was his trademark.

내가 병원에 도착하고 잠시 후 병실이 조용해지자 할아버지가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셨다. “배웅하러" 그러고 숨을 쉬고서, “와 줘서” 다시 한 번 숨을 쉬었다. “ 고맙구나.” 할아버지는 다시 나와 악수를 했고, 트레이드마크였던 뻣뻣하게 반쯤 흔드는 인사를 하였다.

It was a bravura performance, one that he was unable to sustain as his condition worsened. By 11 p.m., he could only gasp out one word at a time, usually a request for water. Sometimes a simple cry for help.

할아버지의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기 때문에 할아버지로서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고도의 예술적 기교였다. 밤 11시, 할아버지는 한 번에 한 단어만 겨우 내뱉을 수 있었다. 대개 물을 달라는 요청이었다. 때로는 도움을 요청하는 신음 소리일 뿐이었다.

Shortly before midnight, the nurse told us now was the time to summon anyone who wanted to see him for the last time. My dad left quickly to fetch my aunt and my grandmother from home nearby, and left me alone with Opa.

자정 직전, 간호사가 이제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볼 사람들을 불러오라고 말하였다. 아버지는 병원 근처 집에 계시던 고모와 할머니를 데리러 급히 나갔고, 나 혼자 할아버지 옆에 남았다.

He could not respond with pressure when I squeezed his hand, so I stroked his arm lightly, soothingly, I hoped. I wet down a rag and daubed at his forehead, and I adjusted the breathing mask over the thick, careless white beard he'd grown in retirement.
I held him and spoke loudly and directly into his right ear. I promised him I would tell his great-grandson all about him one day, I told him he was a good man, something I'm not sure he ever truly believed.

할아버지는 내가 손을 힘껏 쥐어도 반응하지 않아서, 할아버지의 팔을 가볍게, 어루만지듯 두드렸다. 나는 수건을 적셔 할아버지의 이마에 올려 드렸다. 할아버지가 은퇴하신 이후 아무렇게나 기른 굵고 흰 수염 위로 호흡기를 조정했다. 할아버지를 붙잡고 오른쪽 귀에 대고 크게 말했다. 할아버지에게 약속한다고. 언젠가 할아버지의 증손자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모든 것을 얘기해 주겠다고. 할아버지는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말했고, 할아버지가 진실로 믿었는지 알 수 없는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There are sad things and there are tragedies, and this was just a sad thing. Tragedies are when people are cut down in or even before their prime with hosts of promises unfulfilled. But Opa had lived in nine decades, achieved a measure of professional success, raised a family, lived to be able to walk down a street with four generations of his own family and never lost the edge from his sharp and unusual mind.

세상에는 슬픈 일도 있고 비극도 있다. 이번 일은 슬픈 일이었다. 비극이란 전성기에 또는 전성기 이전에 수많은 가능성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90년 가까이 살았고, 학자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가족을 부양하였고, 네 세대가 함께 거리를 걸어갈 정도로 살았으며, 그 날카롭게 비범한 정신을 결코 잃지도 않았다.

He was dying sooner than any of us wanted or expected, but he'd avoided the interminable decline that afflicts so many of his age, and most of the prolonged suffering that often attends death. We should all last so long, we should all go so quickly, we should all be able to hear and understand the parting sentiments of those we love.

할아버지는 우리 바람보다도 우리 예상보다도 먼저 돌아가시게 되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당신 연령대를 괴롭히는 끝없는 쇠약을 면하셨고, 종종 죽음을 수반하는 연장된 고통 대부분도 겪지 않으셨다. 우리 모두는 오래 동안 살아남아야 하고, 우리 모두는 빨리 가야 하며, 우리 모두는 우리가 사랑했던 이들과 헤어지며 겪는 상심을 듣고 이해해야 한다.

I was lucky. I got to him in time to say to him words that, next time, with the next person, I swear I will not wait so long to say:
"We're proud of you," I said into his ear as I bent over him. "Your family loves you."
He struggled to echo me, one faint word at a time. "My / family / loves / me."
It was the last sentence he ever said-not as far reaching or famous a proposition as Zorn's Lemma, but equally lasting and, I think, more profound. It, too, will be his legacy.

나는 운이 좋았다. 다음 번에 다음 사람에게는 이 말을 하느라 오랜 시간을 기다리지 않겠다고 맹세한 말을 할아버지에게 할 수 있었으니까.
“우리는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나는 허리를 숙이고 할아버지 귀에 대고 말하였다.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를 사랑해요.”
할아버지는 나에게 힘겹게 대답하였다. 한 번에 겨우 한 단어씩. “내 / 가족은 / 나를 / 사랑해.”
할아버지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초른의 보조정리만큼 원대하지도 않고 유명하지도 않지만, 그만큼 영원할 것이며, 내 생각에는 더 심오한 말이었다. 이 또한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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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Zorn, 초른
Posted by puzzlist
2015.11.05 14:05

2016년 수학 달력 Math2015.11.05 14:05

한 부에 8000원입니다. 배송비 별도. 10부 사면 한 부 더 드리는 10+1 행사 중.


구입하고 싶은 분은 대한수학회( kms@kms.or.kr )로 메일 보내면 안내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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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uzzlist
2015.08.03 15:13

맥 OS 업데이트하다 먹통될 때 Other interests2015.08.03 15:13

iMac OS를 업데이트 하다 문제가 생겼다.


컴퓨터가 열심히 업데이트 다 하고 재시동하더니, 회색 바탕 화면에 마우스 커서만 움직이고 아무 것도 되지 않았다. 원래 여기서 로그인 버튼이 떠야 하는데.


그래서 애플 고객 센터에 전화 걸어 물어보니, cmd-R 누르고 재시동하란다. 그러고 OS 재설치를 선택. 다시 다운로드하고 재시동되더니 재설치 시작.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 "약 3분 남음" 상태에서 꼼짝을 않았다.


고객 센터에 다시 물어보니, 하드 점검을 해 보란다. 당연히 아무 이상 없었다. 이번엔 OS 재설치를 위해 USB 메모리 스틱으로 부팅 디스크를 만들자고 한다. 다운로드 완료하고 재시동 후 재설치할 때 문제가 생긴 건데, 따로 부팅 디스크를 만드는 게 무슨 차이가 있다고? 어이가 없어서 얘기를 하니, 고객 센터에서는 하드웨어 문제 같으니 수리점에 들고 가 보란다.


이런 현상으로 문의하는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처음이라고 한다. 애플 수리점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다고.


이 상황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페친들이 해결책을 알려주었다. 역시 고객 센터보다는 경험자들이 낫다.


먼저, "약 3분 남음" 상태에서 cmd-L을 누르면 현재 진행 상황이 나타난다. 내 경우, TeX 파일들을 옮기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이었다. 12시간까지 걸린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5시간 정도 지나니 설치가 완료되었다.


문제는, 설치 완료 후 재시동했더니, 다시 회색 바탕에 마우스 커서만 나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시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안전 모드로 부팅해 보라고 한다. 맥을 껐다 켜면서 shift 키를 누르고 있으니 느릿느릿 작동하면서 로그인. 다시 OS 설치 중 화면이 뜨더니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설치됨"이 떴다. 재시동하니 이번에는 로그인 화면이 뜨면서 정상적으로 작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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