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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11. 13:49

수학자 Max Zorn Math2015. 11. 11. 13:49

며칠 전 이임학 교수에 대한 기사가 소개되면서 수학자 Max Zorn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었다. 

수학 전공자라면 Zorn's lemma로 잊을 수 없는 이름인데, 어떤 분인지 잘 알려져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소개하는 글. 원문은 Chicago Tribune 1993년 3월 11일자 칼럼이다.

Max Zorn의 생애를 보면, 요즘 사회 분위기가 마치 1930년대 나치 정권 치하의 독일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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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ath Wizard, Hero To His Family

가족에게 영웅이었던 수학의 마법사

March 11, 1993 | By Eric Zorn.

1993년 3월 11일 에릭 존

I don't pretend to understand Zorn's Lemma-it is a statement of principle in higher mathematical set theory, and I never got smart enough to take a class where it came in handy.

초른의 보조정리(Zorn’s Lemma)를 아는 척하지 않겠다. 그것은 더 수준 높은 수학적 집합론에서 어떤 원리를 표현한 것이고, 나는 결코 그 보조정리가 쓸모있는 수업을 들을 만큼 똑똑하지도 않았다.

And although it's not as common or useful as, say, the Pythagorean Theorem, it does appear in many standard dictionaries as well as in the title of the 1969 popular reference book "Whose What? Aaron's Beard to Zorn's Lemma." Math types always please me when they ask, "Are you related to the Zorn?"

이 보조정리는, 예컨대 피타고라스 정리만큼 흔하거나 유용하지는 않지만, 1969년의 참고 서적 제목인 “누구의 무엇? 아론(Aaron)의 수염(옮긴이: 식물의 한 종류)부터 초른(Zorn)의 보조정리까지”에서와 같이 많은 표준적인 사전에 등장하였다. 수학을 잘 아는 사람들이 이런 질문으로 나를 기쁘게 했다. “초른이랑 관련 있으세요?”

I am. My grandfather, Max, published the lemma in 1935. I had occasion to think a lot about the man and his lemma Monday afternoon when, in response to an urgent call from my father, I drove to Bloomington, Ind., hoping to get to his bedside before he died.

그렇다. 나의 할아버지인 맥스 존(막스 초른 Max Zorn)이 저 보조정리를 1935년에 출판하였다. 월요일 오후, 아버지에게서 온 긴급 전화 때문에 인디애나 주 블루밍턴으로 차를 몰고 가면서, 나는 할아버지와 그 보조정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기회를 가졌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임종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He was 86 and had suffered unexpected and severe congestive heart failure. His lungs were filling with fluid, Dad said, his heart was nearly dead and nothing could or would be done to save him. His doctor had given him between three hours and two days to live.

할아버지는 86세였고 예상치 못한 심각한 울혈성 심부전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폐는 물이 찼고, 아버지 말씀으로는 할아버지의 심장이 거의 죽었고 할아버지를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었다. 의사는 할아버지에게 세 시간에서 이틀 정도 살 수 있다고 했다.

It takes roughly five hours to drive from here to Bloomington, and on the way I thought back on what he had accomplished. I was always proud to be his only grandson, but what I was proudest of was not that he had written the lemma, but that he had fought against the emerging Nazi party in his native Germany before World War II.

여기서 블루밍턴까지는 대충 다섯 시간 정도 걸렸고, 가는 길에 나는 할아버지가 이루었던 것에 대해 회상하였다. 나는 언제나 할아버지의 손자인 게 자랑스러웠지만, 내가 가장 자랑스러웠던 것은 할아버지가 그 보조정리를 썼다는 게 아니라 제이 차 세계대전 전에 할아버지의 고국인 독일에서 부상하던 나치당에 맞서 싸웠다는 것이었다.

He spoke with a raspy, airy voice most of his life. Few people knew why, because he only told the story after significant prodding, but he talked that way because pro-Hitler thugs who objected to his politics had battered his throat in a 1933 street fight.

할아버지는 거의 평생 동안 바람 새는 듯한 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심각한 부상 이후 이야기만 하셨기 때문에 이유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할아버지 목소리가 그랬던 이유는 할아버지의 정치적 견해에 반대하는, 히틀러를 지지하는 폭력배들이 1933년에 길거리에서 할아버지의 목을 가격했기 때문이었다.

He and his wife, Alice, and their young son, my father, fled to the United States in 1934.

할아버지와 할머니 앨리스는 어린 아들, 그러니까 내 아버지를 데리고 1934년에 미국으로 오셨다.

He was not yet 30 when he made his first and, as it turned out, only lasting mark on his profession. Zorn's Lemma gave him international recognition, but ended up haunting him, as early glory so often does.

할아버지가 자신의 첫번째 업적이며 할아버지의 경력에서 영원히 남게 될 유일한 업적을 이루었을 때 서른이 되지 않았다. 초른의 보조정리는 할아버지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 주었지만, 이른 영광이 늘 그러하듯, 그 보조정리는 할아버지를 끝까지 옭아매었다.

Even after his retirement from the Indiana University mathematics department in 1972, he continued to write in his notebooks and go to his office every day hoping, it seemed, to come up with something equally lasting or more profound.

심지어 할아버지는 1972년에 인디애나 대학 수학과에서 퇴직한 이후로도, 계속해서 연구 노트를 쓰며 매일 연구실로 출근하셨다. 그 보조정리에 버금 가게 영원하거나 그만큼 심오한 결과를 얻기를 바라면서.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I won the race to Bloomington. Max (I always called him Opa) was conscious when I arrived shortly after 9 p.m., and greeted me with a surprisingly strong handshake. He asked, in a voice muffled by the oxygen mask through which he was drawing horrible, wet breaths, if my 3-year-old son was able to dress himself yet.

블루밍턴까지의 경주는 내가 이겼다. 저녁 9시 직후 내가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는 아직 의식이 있었고 놀랍게도 힘센 악수로 나에게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는 끔찍하고 축축한 호흡을 의지하고 있는 산소 마스크 때문에 작아진 소리로, 세 살인 내 아들이 이제 혼자서 옷을 입을 수 있냐고 물었다.

Small talk. Earlier that day he'd spoken to his doctor and to the family about the gravity of his condition and the impossibility of recovery. There was no hope for a miracle here, no doubt of the outcome. So he and my grandmother had taken time to embrace and reminisce about the old days when they had been university students together in Germany.

대화는 길지 않았다. 이미 이전에 할아버지는 의사와 가족들에게 자신의 상태가 위중하며 회복이 불가능함을 이야기하였다. 기적이 일어날 희망은 없으며, 결과를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포옹하며 두 분이 독일에서 함께 대학을 다녔던 옛날을 회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After I had been there a while and the room turned quiet, he said to all of us, "Thank you," then took a breath, "for coming to see me off," he took another breath, "in a certain way." He shook my hand again and gave the stiff, half-wave salute that was his trademark.

내가 병원에 도착하고 잠시 후 병실이 조용해지자 할아버지가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셨다. “배웅하러" 그러고 숨을 쉬고서, “와 줘서” 다시 한 번 숨을 쉬었다. “ 고맙구나.” 할아버지는 다시 나와 악수를 했고, 트레이드마크였던 뻣뻣하게 반쯤 흔드는 인사를 하였다.

It was a bravura performance, one that he was unable to sustain as his condition worsened. By 11 p.m., he could only gasp out one word at a time, usually a request for water. Sometimes a simple cry for help.

할아버지의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기 때문에 할아버지로서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고도의 예술적 기교였다. 밤 11시, 할아버지는 한 번에 한 단어만 겨우 내뱉을 수 있었다. 대개 물을 달라는 요청이었다. 때로는 도움을 요청하는 신음 소리일 뿐이었다.

Shortly before midnight, the nurse told us now was the time to summon anyone who wanted to see him for the last time. My dad left quickly to fetch my aunt and my grandmother from home nearby, and left me alone with Opa.

자정 직전, 간호사가 이제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볼 사람들을 불러오라고 말하였다. 아버지는 병원 근처 집에 계시던 고모와 할머니를 데리러 급히 나갔고, 나 혼자 할아버지 옆에 남았다.

He could not respond with pressure when I squeezed his hand, so I stroked his arm lightly, soothingly, I hoped. I wet down a rag and daubed at his forehead, and I adjusted the breathing mask over the thick, careless white beard he'd grown in retirement.
I held him and spoke loudly and directly into his right ear. I promised him I would tell his great-grandson all about him one day, I told him he was a good man, something I'm not sure he ever truly believed.

할아버지는 내가 손을 힘껏 쥐어도 반응하지 않아서, 할아버지의 팔을 가볍게, 어루만지듯 두드렸다. 나는 수건을 적셔 할아버지의 이마에 올려 드렸다. 할아버지가 은퇴하신 이후 아무렇게나 기른 굵고 흰 수염 위로 호흡기를 조정했다. 할아버지를 붙잡고 오른쪽 귀에 대고 크게 말했다. 할아버지에게 약속한다고. 언젠가 할아버지의 증손자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모든 것을 얘기해 주겠다고. 할아버지는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말했고, 할아버지가 진실로 믿었는지 알 수 없는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There are sad things and there are tragedies, and this was just a sad thing. Tragedies are when people are cut down in or even before their prime with hosts of promises unfulfilled. But Opa had lived in nine decades, achieved a measure of professional success, raised a family, lived to be able to walk down a street with four generations of his own family and never lost the edge from his sharp and unusual mind.

세상에는 슬픈 일도 있고 비극도 있다. 이번 일은 슬픈 일이었다. 비극이란 전성기에 또는 전성기 이전에 수많은 가능성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90년 가까이 살았고, 학자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가족을 부양하였고, 네 세대가 함께 거리를 걸어갈 정도로 살았으며, 그 날카롭게 비범한 정신을 결코 잃지도 않았다.

He was dying sooner than any of us wanted or expected, but he'd avoided the interminable decline that afflicts so many of his age, and most of the prolonged suffering that often attends death. We should all last so long, we should all go so quickly, we should all be able to hear and understand the parting sentiments of those we love.

할아버지는 우리 바람보다도 우리 예상보다도 먼저 돌아가시게 되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당신 연령대를 괴롭히는 끝없는 쇠약을 면하셨고, 종종 죽음을 수반하는 연장된 고통 대부분도 겪지 않으셨다. 우리 모두는 오래 동안 살아남아야 하고, 우리 모두는 빨리 가야 하며, 우리 모두는 우리가 사랑했던 이들과 헤어지며 겪는 상심을 듣고 이해해야 한다.

I was lucky. I got to him in time to say to him words that, next time, with the next person, I swear I will not wait so long to say:
"We're proud of you," I said into his ear as I bent over him. "Your family loves you."
He struggled to echo me, one faint word at a time. "My / family / loves / me."
It was the last sentence he ever said-not as far reaching or famous a proposition as Zorn's Lemma, but equally lasting and, I think, more profound. It, too, will be his legacy.

나는 운이 좋았다. 다음 번에 다음 사람에게는 이 말을 하느라 오랜 시간을 기다리지 않겠다고 맹세한 말을 할아버지에게 할 수 있었으니까.
“우리는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나는 허리를 숙이고 할아버지 귀에 대고 말하였다.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를 사랑해요.”
할아버지는 나에게 힘겹게 대답하였다. 한 번에 겨우 한 단어씩. “내 / 가족은 / 나를 / 사랑해.”
할아버지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초른의 보조정리만큼 원대하지도 않고 유명하지도 않지만, 그만큼 영원할 것이며, 내 생각에는 더 심오한 말이었다. 이 또한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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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uzz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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