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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겐지'에 해당되는 글 1

  1. 2015.06.26 누가 수학을 싫어하게 하는가
2015. 6. 26. 16:56

누가 수학을 싫어하게 하는가 Math2015. 6. 26. 16:56

이 글은 일본 세키 다카카즈 연구소 소장인 우에노 겐지 교수가 자신의 책 「누가 수학을 싫어하게 하는가」에서 당시 일본 수학교육과정 개편에 대해 비판하며 쓴 글이다. 번역하신 부산대 수학교육과 김부윤 교수의 허락을 얻어 전문을 올린다.



이차방정식

우에노 겐지(上野健爾)
김부윤(부산대 수학교육과 교수) 번역

교육과정심의회(이후 ‘교과심’으로 적는다) 의장인 미우라 슈몬(三浦朱門) 씨가 잡지 「週間敎育Pro」 1997년 4월 1일호의 인터뷰 기사 「교육, 이후의 방향」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고 있다. 교과 이기주의를 없애기 위해서, 예를 들어 수학에서는 「소노 아야코(曾野綾子)처럼 “나는 이차방정식도 제대로 할 수 없지만, 65세가 되는 오늘까지 전혀 부자유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수학 혐오 위원을 반수 이상 포함해서 수학 교과내용을 엄선할 필요가 있다고. 이 발언으로부터 1년 2개월 정도 지난 금년(1998년) 6월에 교과심(敎課審)의 심의의 정리가 나왔고, 이차방정식의 해의 공식은 중학교 수학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 발언이 이차방정식이 아니고, 예를 들어 「나는 이과를 대단히 싫어하며, 지동설은 일상생활에 필요로 하지 않았으므로 가르칠 필요는 없다.」라는 발언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三浦朱門 씨의 발언에 매스컴은 물론이고 수학교육 관계자까지 어느 한 사람도 공적으로 반론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 수학이 놓여 있는 입장을 말하고도 남음이 있는 사실이다.
이차방정식은 옛날부터 수학에 등장하여, 그 해법을 둘러싸고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십진법의 기수법을 일찍부터 이용하여 음의 수도 자유자재로 구사한 고대 중국을 별도로 하면, 계수의 양음의 차이에 따라 이차방정식을 다루는 방법의 차이에 많은 수학자들이 고생했다.
인도의 수학과 그리스의 수학을 이어받아서 9세기 전반에 활약한 아라비아의 수학자 알콰리즈미(al-Khwarizmi)는 이차방정식을 모든 계수가 양이 되는 표준형으로 분류하고, 기하학적으로 해를 구했다. 그의 저서 “Al-jabr wa’l muqabala”의 「이항」을 의미하는 아라비아어 Al-jabr이 Algebra(대수)의 어원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 12세기에 알콰리즈미의 저서가 라틴어로 번역되었을 때, 그의 이름은 라틴 식으로 Algorismi로 기술되었다. 그것으로부터 알고리즘(Algorithm)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아라비아 수학은 중국의 수학과 마찬가지로 문제 해법의 알고리즘에 중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 명명(命名)은 그 나름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한편,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제곱근이나 세제곱근을 구하는 알고리즘을 확립하고, 고차방정식의 수치해법으로서 호너법(Horner's method)과 같은 방법이 이미 11세기에서부터 13세기에 걸쳐서 확립되었다. 이 점에서 중국 수학은 훨씬 시대를 뛰어넘고 있었다.
실용을 중시한 중국 수학에서는 방정식의 해를 근사적으로 구하는 것으로 시종했다. 그러나 이것이 화(禍)가 되어 방정식을 푸는 것의 의미나 이차방정식의, 더욱이 고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구하는 방향으로 수학은 진전해 가지 못했다, 방정식을 문자식으로 나타내는 것은 중국에서 고차방정식의 수치해법과 동시에 확립되었는데, 계수까지가 문자로 된 일반방정식을 나타내는 문자식은 끝끝내 중국 수학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다. 서양 수학이 수입되어 그것에 대항하는 형태로 전개된 후기 중국 수학에서도 일반적인 문자식은 등장하지 않았다. 언제든지 원하는 정도(精度)로 방정식의 해를 구할 수 있었던 중국 수학에서 실용적인 관점에서 일반 방정식을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문제로 하게 된 것은 근세 유럽이다. 이차방정식의 근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은 다항식의 인수분해와 밀접하게 관계되며, 복소수가 탄생하는 계기도 되었다. 그를 위해서는 문자식의 등장이 필요했다.
문자식의 등장에 따라 수학이 얼마만큼 풍부하게 되었을까? 근세 유럽 수학의 역사를 보면, 일목요연하며, 또 일본의 세키 타카카즈(關孝和;Seki Takakazu,1642~1708년) 이후의 와산(和算)의 흥망 역사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세키 타카카즈는 방서법(榜書法)의 이름과 함께, 중국 수학에서의 방정식의 기법을 일반화해서 문자식에 도달했던 것이었다.
문자식은 오늘날 우리들은 당연한 것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일보일석에 탄생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실용상의 필요에서 가장 수학이 진보한 중국에서 오히려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중학교 수학에서 가르쳐온 이차방정식의 배후에는 실로 많은 수학자들의 노고의 역사가 있으며, 배우는 것은 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차방정식을 중학교 수학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는 전문가 사이에서 큰 논의가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알지 못하면 곤란할까 곤란하지 않을까로 중학교에서 가르칠까 가르치지 않을까를 논의해야 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수학에 한정하지 않고, 과학기술을 지탱해온 많은 학문은 문명의 이기로서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문화 속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 있다. 지구는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 이것을 모르더라도 일상생활에는 아무 지장도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인식이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뀐 것은 대사건이었다. 우리들이 관찰하고 있는 것은 반드시 세계는 움직인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관측결과에 바탕을 둔 추론을 반복해갈 필요가 있다는 것, 그 결과는 때로는 우리들의 직관과는 크게 어긋난다는 것, 이러한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들의 인식에 관한 대사건이었다.
마찬가지의 것은, 수학에서는 이미 고대 그리스 이후 알려져 있었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단순한 사실로부터, 추론의 반복으로 당연하다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사실을 보일 수 있다. 복잡한 수학적 사실을 소수의 공리로부터 유도한 유클리드의 「원론」은 수학의 추론의 힘을 여실히 보이고 있다. 또 예를 들어, 평면기하학에서 잘 알려진 사실 「두 점을 잇는 직선 가운데 최단인 것은 직선이다.」는 사실로부터 어느 정도 깊은 수학적 사실이 나올까? 극대극소문제에서 변분 문제로 시야를 넓혀 가면, 다시금 현대 기하학이나 물리학까지 관련되도록 논의를 깊게 할 수 있다.
이처럼 생각하는 것의 불가사의함, 중요함을 수학은 가르쳐준다. 유클리드의 「원론」으로 대표되는 학문으로서의 수학의 탄생은, 고대 그리스인의 위대한 업적이며, 오늘날 과학문명의 기초가 되어 있지만, 또 한편으로 우리들의 문화 속에 사고방법의 기초를 주는 것으로서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것을 우리들은 평소 거의 의식한 적은 없지만.
이렇게 수학은 단순히 계산방법, 문제 풀이 방법을 가르치는 학문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 그것을 문제로 하는 학문이다.
이차방정식의 해의 공식을 생각하면, 제곱해서 음이 되는 수를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 등장해온다. 그것은 또 많은 수학자들이 「허(虛)의 수」로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망설였던 「수」였다. 그러나 오늘날 복소수는 수학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전기공학이나 물리의 양자역학에서도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차방정식과 밀접하게 관련된 복소수는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문명을 떠받치는 중요한 도구로서 대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53세가 되는 오늘까지 소노 아야코의 문장도, 미우라 슈몬의 문장도 한 줄도 읽은 적이 없고, 그것으로 인해 생활에서 어떤 불편도 느낀 적이 없다. 그렇다고 그 이유만으로 그들의 문장을 초등중등교육의 교과서에서 다룰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면 폭언의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초등중등교육에 적합한 문장일까 아닐까는 교과서를 작성할 때에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또 나는 지금까지 하이쿠(俳句)를 한 구절도 외운 적이 없고, 그것으로 인해 부자유함을 느낀 적은 없다. 많은 사람들에 있어서도 그렇다. 그렇다고 하이쿠를 초등중등교육의 국어 시간에서 없애버린다면, 우리들은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바쇼(芭蕉)[각주:1]는 자신의 하이카이(俳諧)[각주:2]를 「하로동선(夏炉冬扇)」[각주:3]이라 일컫는다. 일상생활에는 불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바쇼는 자신의 하이카이가 사이쿄(西行)[각주:4]나 소우기(宗祇)[각주:5]의 전통을 물려받은 예술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하로동선」의 하이카이는 언어의 사용방법을 엄하게 음미하고, 언어가 가지는 의미를 깊게 해준다. 그것에 의해 언어가 가지는 힘을 우리들에게 재인식시킴과 함께, 우리들의 정감을 풍부하게 해준다. 그것이 문화가 가지는 중요한 활동이다.
현재의 일본에서는 교육에서조차 바로 도움이 되는, 목전의 것만 쫓아감으로써, 문화라는 중요한 것을 망각하려고 하지는 않는 것일까?

언어라는 관점에서 수학은 또 현대의 많은 학문을 기술하는 언어로서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수학교육에 대한 많은 비판은 「하로동선」 비슷한 것만 가르치고, 도움이 되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국어교육으로 말하면, 하이쿠나 단카(短歌)[각주:6] 등을 가르치기보다는, 바로 도움이 되는 편지 쓰는 방법을 가르쳐요 라고 한 논의와 비슷하다. 그러나 하이쿠의 세계를 앎으로써, 언어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하면, 설득력 있는 의뢰장을 쓰는 것도 할 수 있다면, 기지가 풍부한 편지를 쓰는 것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학교육에 대한 비판에는 물론 일리가 있으며, 수학자도 수학교육자도 크게 반성해야 할 점이 있음은 확실하지만, 도움이 되는 것만 가르치고 그것으로 충분할까 라는 기본적인 의문이 남는다. 「하로동선」의 세계를 들여다봄으로써, 도구로서의 수학의 더욱 뛰어남을 기대할 수 있으며, 또 뜻밖의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도움이 되는 세계를 떠나서 「하로동선」의 세계에서 배우는 것은, 긴 안목에서 보면 이상할 정도로 도움이 되는 세계를 손에 넣는 것으로 되지 않을까? 수학의 진짜 유용성이라는 것은 「하로동선」의 세계에 많은 혜택을 입고 있는 것은 역사를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물론 바로 도움이 되는 수학이 「하로동선」의 세계에서 크게 기여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소리를 크게 해서 말해두지 않으면 치우친 견해가 될 것이다. 중국 수학이 실용 학문에서 출발해서 크게 진전한 것은 그 한 예이다. 그렇지만 고도로 발달한 중국 수학은 한편으로는 그것의 가장 고도의 부분은 실용에 필요가 없다는 것에서 망각해버려, 더 진전해 갈 수 없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이쿠로 말하면, 저에게는 부손(蕪村)[각주:7]의 하이쿠가 가장 불가사의 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 부손에게는

    추위 속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중국의 역수(易水)[각주:8]에 흰 굵은 파가 흐르고 있다.
       易水にねぶか流るる寒さかな

라는 이상한 구절이 있다. 연(燕)나라의 태자 단(丹)의 의뢰를 받아 진왕(秦王;뒤에 시황제)을 암살하러 나서는 형가(荊軻)[각주:9]는, 연나라의 국경을 흐르는 역수에서 단(丹)과의 이별에 즈음하여

    바람은 스산하고 역수 강물은 차갑도다, 
         風蕭蕭兮易水寒
    사나이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壯士一去兮不復還

라고 노래했다. 형가의 진왕 암살은 실패해버렸는데, 이 구절은 「사기(史記)」의 「자객열전」에 묘사된 이야기를 전제로 하고 있음은 틀리지 않다. 이 역수에 파가 흐르고 있다. 누군가가 요리로 사용한 자투리인지도 모른다. 파의 흰 자투리가 흐르고 있는 거리의 청류(淸流)와 역수가 돌연 겹쳐버리는, 실로 불가사의한 구절이다. 역사의 장대한 한 장면과 거리의 비근한 정경(가장 이러한 정경도 없어져 버렸다)이 하나로 되어버리는 장면에서, 이 구절의 불가사의함과 부손의 세계의 불가사의함이 있다.
이 구절을 비롯하여, 부손의 하이쿠를 외워 가면, 그가 살았던 세계와 시대를 더욱 알고 싶게 되어간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은 이 부손의 구절을 앞에 두고, 백과사전이나 인터넷으로 장소 ‘역수(易水)’를 조사하고, 풍경 사진이 없을까 조사하고, 부손의 전기를 조사해가면, 이 구절을 음미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면 구절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언어를 조사하면 그것으로 됐다고 말해버리는 쪽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문화로서의 관점이 전혀 누락되어 버리고 있다.

수학에서도 상황은 같다. 이차방정식의 해의 공식을 중학교 수학에서 추방함으로써, 수학을 통해서 생각하는 것의 대단함을 알리고, 수학의 확대를 보일 기회가 중학교 수학에서부터 하나 없어지게 되었다. 이차방정식의 해의 공식을 단순한 지식으로, 암기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면, 그것은 타당한 조치일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수학이라는 것은 본래 사고방법을 문제로 하는 학문이다. 해의 공식을 앞에 두고, 학생이 가지는 다양한 의문에 진지하게 대응함으로써, 수학 학습을 심화해가는 길을 교육과정심의회는 취해야 했다. 우리들의 문화를 위해서도, 교과 이기주의를 넘어서, 초등중등교육에서 국어와 수학의 시간 증가야말로 교육과정심의회는 제안해야 했다.
우리나라의 기초교육은 지금 붕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우리들의 문화가 절멸(絶滅)하는 위기이기도 하다.

<誰が数学嫌いにしたのか―教育の再生を求めて, 日本評論社, 2001> p.181-191에서


  1. 마쯔오 바쇼(松尾 芭蕉)는 1644년부터 1694년 10월12일(1694년 11월 28일)까지 생존한 에도 시대 전기의 하이카이(俳諧)사(師)이다. [본문으로]
  2. 주로 에도(江戸) 시대에 빛난 일본문학의 형식, 그리고 그 작품. [본문으로]
  3. 여름 화로와 겨울 부채라는 뜻으로, 철에 맞지 않아 쓸모없는 것을 비유함. [본문으로]
  4. 1118년부터 1190년 3월 31일까지 생존한 헤이안(平安) 시대 말기부터 카마쿠라(鎌倉) 시대 초기에 걸쳐서 활약한 무사・승려・시인이다. [본문으로]
  5. 1421년부터 1502년 9월 1일까지 생존한 무로마치(室町) 시대의 연가사(連歌師)이다. [본문으로]
  6. 음문(韻文)이 있는 와가(和歌)의 한 형식으로 五・七・五・七・七의 오구체(五句体)인 가체(歌体). [본문으로]
  7. 요사 부손(与謝蕪村)은 1716년부터 1784년 1월 17일까지 생존한 에도(江戸) 시대 중기의 일본 시인, 화가이다. [본문으로]
  8. 중국 하북성(河北省)을 흐르는 강. [본문으로]
  9. 형가(荊軻, ?~기원전 227년)는 중국 전국시대의 자객으로, 자는 차비(次非)이며, 위(衛)나라 사람이다. 시황제를 암살하려 했던 인물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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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uzz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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