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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ICM 2014'에 해당되는 글 5

  1. 2015.02.10 ICM 2014 셋째 날 6
  2. 2014.09.15 ICM 2014 둘째 날 - 브리지스 8
  3. 2014.09.10 ICM 2014 첫째 날 - 개막식 이후
  4. 2014.09.07 ICM 2014 첫째 날 - 개막식
  5. 2014.09.05 ICM 2014 개막 하루 전
2015. 2. 10. 11:08

ICM 2014 셋째 날 Math2015. 2. 10. 11:08

둘째 날에는 ICM 행사장인 COEX는 근처에도 못 가보고 하루 종일 과천에 있다가 셋째 날에야 ICM에 참석하였다. 전날, 그러니까 ICM 둘째 날에는 정수론 분야 포스터 발표가 있었다. 재미있...다기보다는 좀 이상해 보이는 제목들이 있어서 구경하고 싶었는데 둘째 날 가 보지 못해 셋째 날에 전해 듣기만 하였다.


다음 사진은 그 가운데 가장 유명했던(?) 하나. 무려 소수를 만들어 내는 공식이다.


사진은 이동건 박사 페이스북에서


이번 ICM에서 나는 학회 프로시딩을 담당한 편집위원을 겸하게 되어서, 발표자들이 보내온 초록 편집도 일부 담당하였는데, 제목과 초록을 보면 정말 이상한 발표들이 많았다. 리만 가설을 증명했다는 주장, 중학교 수준의 간단한 내용 등등. 그 가운데 하나가 저 소수 생성 공식으로,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엉터리다.

저 포스터가 주장하는 것은,
\[3 \times 5 - 2 = 13, 3 \times 5 \times 7 - 2 = 103, 3 \times 5 \times 7 \times 11 - 2 = 1153\]
등등이 모두 소수라는 것이다. 몇 개 계산해 보면

\[3 \times 5 \times \dotsb \times 23 \times 29 - 2 = 3234846613 = 43 \times 167 \times 450473\]

로 합성수가 나온다.


이 사실을 지적해 주니, 저 포스터 주인, 밑에다 "몇 개의 반례를 제외하면 사실"이라고 추가했다고. 아마도 저런 형태의 소수가 무한히 많으냐 그렇지 않으냐는 미해결 문제일 텐데, 무슨 생각으로 저런 포스터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나중에 들어보니, 외국 나가기 쉽지 않은 일부 국가에서는 ICM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비자를 받아서 외국 나간 다음 불법 체류하는 사람도 있다고. 실제로 이번 ICM에서도 발표 신청해 놓고 나타나지 않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 대부분 발표 제목이 뭔가 이상했다.


8월 15일 광복절인 셋째 날 오후 강연은 아르투르 아빌라(Artur Avila)로 시작. 필즈상 수상자여서 대인기. 둘째 날 필즈 메달리스트 강연은 마르틴 하이러(Martin Hairer)가 진행하였다. 그렇지만 셋째 날에 아마도 수학자들이 더 많이 관심을 가졌을 강연은 저녁 6시에 시작된 존 밀너(John Milnor)의 강연. 필즈상, 울프상, 아벨상을 모두 수상한, 그야말로 "수학의 신". 인품도 신에 가깝다. 강연 제목은 Topology through Four Centuries.


이 강연은 아벨상 재단에서 후원하는 것으로, 지난 ICM 2010부터 시작되었다. 주최국에서 아벨상 수상자 가운데 한 명을 강연자로 선정할 수 있다. 지난 대회 때는 2007년 수상자였던 인도 출신 스리니바사 바라단(Srinivasa Varadhan). 인도에서 개최하니 인도인 수상자를 고르는 게 당연했다. 덕분에 "수학의 신"을 우리나라에서 모실 수 있게 되었고.


1931년 생인 Milnor는 83세. 동영상을 보면 자세도 구부정하고 말할 때 숨도 차서, 저러다 쓰러지시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게 된다. 불행히도 나는 이 강연을 직접 보지 못했다. 저녁에 과천과학관에서 브리지스 특별강연으로 하버드 수학과 노엄 엘키스(Noam Elkies) 교수가 음악과 수학에 대한 강연을 했기 때문이다. 주제는 예상했던 대로 대위법. 엘키스는 피아노에 앉아서 종이에 대위법 주제를 그리고, 직접 피아노까지 쳤다. 전형적인 유태인으로 외모만 보면 그리 매력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천재 수학자에 피아노가 더해지니 후광이 번쩍이는 느낌.


밀너 교수의 강연을 못 본 것은 아쉬웠지만, 동영상으로 대신하기로 하였다. 다행히 이번 ICM에서는 거의 모든 강연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려놓았다. 사실 학회 강연 동영상이라는 게 대부분 별 쓸모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촬영 경험이 풍부한 김선화 박사가 참여하면서 동영상이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예전 동영상을 보면, 강연 슬라이드만 찍거나 강연자만 찍어 놓은 경우가 많았다. 수학에 대해 잘 모르는 방송사에서 찍으면 특히 이런 경우가 많았다. 강연자만 열심히 찍다가 가끔 슬라이드를 넣는 형태. 슬라이드를 안 보여 주니 내용을 이해하기도 힘들고, 아무 움직임 없이 슬라이드만 보여줄 때는 현장감이 없어서 집중이 안 되었다. 김선화 박사는 이런 문제점을 아주 잘 알고 있어서, 한쪽에는 강연자 모습을 보여주고, 한쪽에는 슬라이드를 보여줘서 거의 완벽한 강연 동영상을 만들어내었다. 아마도 수학 분야에서는 표준적인 형태가 되지 않을지.


이번 ICM에는 정말 수많은 능력자들이 참여하였다. 후발국의 수학자 1000명 초청 홈페이지도, ICM 프로그램 앱도 전부 우리나라 수학자들이 자체 개발하였다. 운영 방식에 있어, 이번 ICM은 이전 대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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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15. 14:08

ICM 2014 둘째 날 - 브리지스 Math2014. 9. 15. 14:08

ICM 2014 첫째 날에 몇 가지 사건 사고가 더 있었다. 네반린나 상 수상자인 수바시 코트(Subhash Khot)의 강연과 제임스 사이먼스(James Simons)의 대중 강연 사이에, 비어 있던 강연장에 들어왔던 학생들이 앞 자리에 놓여 있던 상장 케이스를 발견하였다. 사이먼스 강연 준비 때문에 먼저 들어오셨던 강석진 교수님이 받아서 열어 보니 필즈 상 수상자인 마리암 미르자카니(Maryam Mirzakhani)의 필즈 상 증서. 아마도 개막식 때 아이가 울어서 급히 데리고 나가느라 깜빡했던 것 같다. 당연히 학생들은 증서 들고 기념 촬영.


나중에 이 증서를 발견했다고 IMU 사무총장인 마르틴 그뢰첼(Martin Grötschel)에게 이야기하니, 그렇잖아도 증서를 분실했다고 해서 새로 하나 발급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번 ICM 2014에서는 필즈 상 수상자는 네 명이지만, 수상 증서는 다섯 장이 있다.


사실 이것보다 더 황당했던 사고(?)는 둘째 날에서야 발견되었다. 필즈 상 수상자인 만줄 바르가바(Manjul Bhargava)가 숙소에 가서 보니 필즈 메달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 이름이 아니었다고. 그래서 둘째 날 메달에 적힌 원래 주인(마르틴 하이러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에게 들고 갔더니, 그제서야 그 사람도 확인. 그런데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메달에 적힌 이름이 바가바가 아니었다! 확인 결과, 네 사람의 메달이 전부 바뀌어 있었다. 며칠 후에 이 이야기를 들은 조직위원들은 네 사람이 모두 다른 사람 메달을 받을 경우의 수를 계산하였고...


이런 일이 생길 것을 예상하고 수학 달력에 넣었던 항목


사실, 나는 ICM 둘째 날에 대해서는 쓸 이야기가 별로 없다. COEX 대신 과천과학관에 하루 종일 있었기 때문이다. 과천과학관에서 개최된 브리지스 학회(Bridges Conference)가 8월 14일에 개막되었고, 내가 어쩌다 보니 자문위원단 부위원장을 맡는 바람에... 그러니까 나는 ICM 문화분과 위원, 편집분과 겸임 위원, 데일리 뉴스 공동편집인, 여기에 브리지스 자문위원까지 네 개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아침 일찍 과천과학원에 가서 리허설 하고 개막식에서 개회사까지 낭독하였다. 사회는 서울대 수학교육과 권오남 교수님. 권오남 교수님과 상명대 이승연 교수님을 비롯한 지역 조직위원들이 진짜 고생 많이 하셨다. 과천과학관장, 브리지스 조직위원장 레자 사란기(Reza Sarhangi), IMU 잉그리드 도비시(Ingrid Daubechies) 회장의 인사말이 모두 끝난 후, 첫 기조 강연은 옥스퍼드 대학에 계신 김민형 교수. 브리지스는 이름 그대로 수학과 예술의 연계를 추구하는 학회여서, 김민형 교수와 같은 초일류 수학자가 예술적인 이야기를 무얼 할지 궁금하였다. 제목은 Arithmetic Symmetry. 수의 덧셈과 곱셈을 이용하여 멋진 대칭성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궁금한 분은 Galois Visualizations 참고.


이어서 두 번째 기조 강연은 브리지스 조직위원인 카를로 세캥(Carlo Séquin)의 LEGO Knots. 발표 PPT 자료는 여기, 논문집 자료는 여기. 역대 브리지스에서 발표된 논문들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수학 교사들은 한번쯤 훑어보면 좋을 듯.


이밖에도 수많은 전시물, 워크숍 등으로 아주 재미있는 학회였다. 사실 ICM은 수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는 학회이므로, 일반인들은 참여할 만한 프로그램이 많지 않고, 수학자들에게도 자기 관심 분야말고는 재미를 느끼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대중은 물론 수학자들에게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바로 브리지스였다. 나중에 ICM 전시장의 대한수학회 부스에서 한 학부모가 "아이랑 같이 30만원이나 들여서 등록을 했는데 볼 거리가 너무 없다"며 항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애초에 ICM이 그런 것인데 어쩌란 말인지. 그나마 이번 ICM은 대중 프로그램이 많은 편이었다. 그런데도 학회의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요구를 하니 당황스러운 일이다. 마침 브리지스 학회가 같은 기간에 진행되어 이쪽에 참가하도록 소개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ICM을 유치한 직후만 해도 우리는 브리지스 학회라는 게 뭔지도 몰랐는데, 이 모든 사태를 예견한 잉그리드 도비시 IMU 회장이 박형주 ICM 조직위원장에게 브리지스 학회를 같은 기간에 개최하는 방안을 제안해서 이번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바쁜 와중에도 도비시 회장이 아침 일찍 과천과학관에 와서 축사까지 하고 갔다.


이런 전시물    저런 전시물


원래는 ICM 쪽에 들어볼까 싶던 강연이 몇 개 있었으나, 브리지스 개막 첫 날이라 도저히 떠날 분위기가 아니어서 끝까지 남아서 저녁 만찬까지 참석했다. 자문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임시 직함 때문에 만찬장에서도 브리지스 위원회 회장단과 함께 앉았다. 짧은 영어로 이야기하느라 무척 힘들었다. 브리지스의 사란기 회장이 이란 출신이어서, 이번에 이란 출신인 마리암 미르자카니(Maryam Mirzakhani)가 필즈 상을 수상한 걸 축하한다고 하니 아주 기뻐하였다. 재미있게도 사란기 회장의 딸 이름도 Maryam이라고 한다.


이틀 동안 개막식을 두 번 치르고 나니 파김치가 되어서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뻗었다. 내일은 느지막이 출근하리라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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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uzzlist
2014. 9. 10. 18:44

ICM 2014 첫째 날 - 개막식 이후 Math2014. 9. 10. 18:44

개막식이 끝나고 점심 시간. 점심에는 도시락을 제공하기로 하였다. 하필이면 이 기간에 COEX 식당가 공사가 덜 끝나는 바람에 밥 먹는 게 심각한 문제였다. 원래는 ICM 개막 전에 공사를 끝내기로 했는데 그러지 못한 COEX 쪽의 잘못. 그래서 COEX에서 사과의 뜻으로 큰 홀 두 개를 무상으로 빌려줬다. 점심 도시락을 이 홀에서 제공하였다.


지난 인도 ICM 2010에서도 개막식 직후 점심은 도시락을 제공했다. 샌드위치와 카레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이었고, 대부분 별미라는 생각에 카레를 주문했는데, 이게 먹어 보니 괴식에 가까웠다. 그래서 다음 날부터 유료 점심은 대부분 샌드위치로 선택. 그러다 보니 조금 늦으면 매일 새로운 종류의 괴식 카레만 남는 문제가 있었다. 어디 나가 먹을 데도 없었는데.


우리 쪽에서 제공하기로 한 도시락도 처음에는 영 맛이 없어서 한번 퇴짜를 놓고 새 업체를 선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역시 행사준비 분과위원들 고생이 많았다. 동영상 시사하는 날 같이 시식하기로 해서 기다리다가, 결국 나는 기차 시간 때문에 아무것도 못 먹었다. ㅠㅠ


아무튼 이번에 제공된 점심은 꽤 맛있었고, 무엇보다 홀이 넓어서 편히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인도에서는 홀에 탁자 몇 개만 있어서 대부분 바닥에 주저 앉아 점심을 먹어야 했으니, 인도 ICM 갔다 고생했던 사람들은 모두들 만족해 했을 듯. 실제로 이 공간은 커피도 무한 제공하고 있어서 휴식 공간으로도 좋아서 ICM 기간 내내 호평이었다.


오후에는 필즈 상 수상자에 대한 Laudation이 있었다. Laudation은 "칭송"의 뜻으로 필즈 상 수상자의 업적에 대해 대가들이 설명하는 시간이다. 아빌라(Avila)에 대하여 에티엔 기(Etienne Ghys)가, 바르가바(Bhargava)에 대하여 베네딕트 그로스(Benedict Gross)가, 하이러(Hairer)에 대하여 오페르 자이투니(Ofer Zeitouni)가, 그리고 미르자카니(Mirzakhani)에 대하여 커티스 맥멀런(Curtis McMullen)이 강연을 맡았다. 마지막으로 네반린나 상 수상자인 수바시 코트(Subhash Khot)에 대한 칭송은 산제브 아로라(Sanjeev Arora)가 담당하였다. 특히 필즈 상 수상자인 맥멀런이 제자의 필즈 상 수상 업적을 설명하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이로써 사제가 필즈 상을 받은 경우가 Schwartz-Grothendieck, Grothendieck-Deligne, Atiyah-Donaldson, Lions-Villani에 이어 다섯 번째.


저녁에는 한국 수학의 밤(Korean Math Night) 행사가 있었다. ICM 한국 조직위원들과 IMU 위원들, VIP들을 초청하여 진행한 만찬이었다. 의자 없이 서서 가볍게 먹는 행사였는데, 무거운 가방 든 사람들이 많아 좀 힘들고 어수선했다. 이어서 8시부터 대중 강연.


첫날의 가장 큰 이벤트는 개막식이겠지만, 이번에는 저녁 대중 강연도 큰 이벤트였다. 무엇보다 연사가 그 유명한 제임스 사이먼스(James Simons)였으니. 세계 최고의 펀드 매니저 가운데 한 명으로, 젊어서 일급 수학자였던 사람이 어느날 월가(Wall street)로 진출하여 최고의 펀드 매니저가 되고, 엄청난 재산을 모은 다음 수학 발전을 위하여 거액을 기부하고 있으니 확실히 화제의 인물이라 할 만하다.


베이징 ICM 2002에서는 존 내시(John Nash)와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이 대중 강연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우리도 그 정도의 인물이 대중 강연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물망에 오른 인물이 사이먼스 회장. 문제는 너무 바쁜 사람이라 ICM 기간에 올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실제로 비서진에서는 절대 참석 불가라고 하였으나, 사이먼스 본인이 직접 일정 조정하고 자가용 비행기로 날아왔다.


유명한 인물이다 보니 청중도 엄청나게 많았다. 유명한 수학자들도 많았고. 이 강연은 내가 속한 문화분과 담당 업무라 한국 수학의 밤 중간에 강연장에 올라가 장내 정리하고 리허설. 원래는 강연 원고를 받아서 번역 자막을 올릴 생각이었으나, 강연 원고 없이 강연한다고 해서 통역사가 통역하는 대로 속기사가 받아적어서 자막을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문제는 통역사는 수학을 잘 모른다는 점. 금융수학 전문가가 한 명 붙어서 자막을 수정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실시간으로 진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Stokes' Theorem"을 "스토크스 정리"가 아니라 "주식 이론"으로 번역하는 사고도 있었다. 수학자 "Yau"를 "야후(Yahoo)"로 번역하기도 하였고. "cohomology"는 "코호몰로지"로 제대로 나오기까지 한 다섯 가지 정도 버전으로 등장했다.하여간 이런 식으로 방송 사고에 가까운 번역이 난무하다 보니 이 강연은 다 찍어 놓고도 VOD 공개를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자막이 안 보이는 버전으로 공개되어 있다.





중간에 자막이 안 뜨는 사고가 나서 통역팀에 가 보니, 속기사들 정말 정신 없이 타자를 치고 있었다. 저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번역을 기대하기는 힘들 수밖에 없어 보였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 시간이 되었는데, 금전적인 지원을 해 달라는 질문이 많았다. 사이먼스 회장이 그런 질문은 하지 말라는 말을 해야 할 정도. 사업을 하고 있는 수학과 선배 한 분은 "당신이 사업을 하는 데 있어 수학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느냐?"라는 질문을 꼭 하고 싶었다는데 질문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아 밀렸다고. 사실 그 선배부터 수학 전공했다는 이유로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다나. 그런데 자기가 아무리 얘기해 봐야 권위가 없다면서 사이먼스 회장의 대답을 인용하고 싶었다고.


강연이 끝나고 나니 엄청난 인파가 사인 요청을 해서 사이먼스 회장을 강연장 뒤편 직원 통로로 대피시켜서 내보내야했다. ICM 2014에서 사이먼스가 대중 강연을 하는 것에 대해 안 좋게 평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은 너무 돈만 밝히는 나라여서, 사이먼스처럼 돈 많은 사람이 "수학 잘 하면 돈 잘 번다"는 식으로 강연하게 하는 것이라는 평이었다. 정말로 부에만 관심이 있어서 사이먼스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수학이 어떠한 역할을 했으며, 이제 그 수학에 어떤 식으로 보답하고 있는지를 사이먼스 같은 대가의 강연을 통해 듣는다는 건 확실히 매력적인 일이 아닐까? 수학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가 주제였다면 나쁜 평을 할 수도 있겠으나, 일반 대중, 그것도 학생들이 많은 대중을 상대로 수학에 대해 설명하는 강연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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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uzzlist
2014. 9. 7. 12:16

ICM 2014 첫째 날 - 개막식 Math2014. 9. 7. 12:16

대망의 ICM 개막식. ICM의 가장 큰 이벤트 가운데 하나는 뭐니뭐니 해도 필즈 메달(Fields medal) 수상식. 관례적으로 개최 국가의 국가 원수가 상을 수여하게 되어 있어서, 대통령 경호 문제로 사전 등록자만 개막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늦을까 봐 아침 일찍 COEX에 도착하여 사전등록처에 가서 이름표와 각종 자료를 받았다. 아침 8시도 안 됐는데 이미 사람들로 북적북적하였다. 개막식장에 들어가니 귀빈석 옆에 조직위원용 자리가 예약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코앞에서 필즈 상 수상자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코앞에서 보는 정도가 아니라 좌석 구역 사이 통로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필즈 상 수상자들이 앉아 있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증명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닌 후배


개막식 전에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 가운데 하나는 필즈 상 수상자 명단이 유출된 것. ICM에서는 극적 효과를 위해 시상식 전까지는 수상자를 공개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새벽에 수상자가 알려져서 위키피디어 항목에까지 올라가 있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나중에 이 사건을 가지고 조직위원회를 비난하기도 했는데,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쓴 자극적인 기사였다.


진상은 이런 거였다. 개막식이 끝나면 필즈 상 수상자가 세계수학연맹(IMU) 홈페이지에 게시되는데, 담당자가 개막식 직후에 바로 공개하기 위하여 홈페이지 내용을 다 만들어서 서버에 올려 놓은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메인 홈페이지에서 해당 항목에 대한 링크만 설정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 그런데 사람들이 해당 항목의 주소를 추측해서 넣어 보니 떡 하니 수상자 명단이 떠 버린 것이다. 이건 명백히 IMU 측 실수.


개막식까지 비밀 유지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데다, 이런 비밀주의가 수상자의 국가 언론에서 자료 만드는 데도 방해가 되는 일이라 앞으로는 개막식 두 달 정도 전에 먼저 공개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실제로 예전 마드리드 ICM 2006에서는 테렌스 타오(Terence Tao)의 수상을 전혀 몰랐던 호주의 공영 방송 사장이 총리에게 박살나는 일도 있었다고.


개막식은 가야금과 해금 연주로 시작하였다. 잠시 후 서울대 수학과 임선희 교수의 사회로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행사가 행사다 보니 임선희 교수는 새벽에 미장원에서 거금을 들여 머리까지 하고 왔다. 개막 동영상이 나올 때는 국악이 나오는 장면에서 무용단이 올라와 공연을 하였다. 저 동영상 최초 시사 때 나도 행사진행위원들과 함께 참관하였는데, 그때는 미완성이기도 했고 어색한 부분도 꽤 있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개막식 때 보니 음향도 좋고 내용도 괜찮아 완성도가 높았다. 제작 감독이 "완성작은 볼 만할 겁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만했다.


개막식 시작 전 담소를 나누고 있는 IMU 사무총장  Grötschel, 1998년 필즈 상 수상자 Gowers, 2003-04 미국 수학회장 Eisenbud.


공연 도중 처용무가 있었는데, 마리암 미르자카니(Maryam Mirzakhani) 교수의 세 살 딸이 처용 얼굴을 보고 무서워 하며 엄청나게 울었다. 아빠가 아무리 안고 돌아서 있어도 굳이 다시 무대로 고개를 돌려보면서 손가락질하며 울었다. 결국 필즈 상 수상자 자리에 앉아 있던 엄마가 와서 안고 나가야 했다.


Mirzakhani 교수의 남편과 딸. 오른쪽은 홀수 Goldbach 추측을 증명한 Harald Helfgott.        문제의 그 처용무
 


대통령 입장은 전파 방해와 함께 시작되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이다 보니 핸드폰을 쓸 수 없도록 전파 방해를 하는 것이다. 잠시 후 박근혜 대통령, 잉그리드 도비시(Ingrid Daubechies) IMU 회장, 박형주 조직위원장,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마르틴 그뢰첼(Martin Grötschel) IMU 사무총장이 입장하였다.


박형주 조직위원장의 개회사로 VIP들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수학자 가운데 최고 미남이라 할 만한 조직위원장님이 이 날은 어쩐지 평소의 샤방한 모습 대신 얼굴도 까칠해 보이고 머리도 다듬지 않은 티가 너무 많이 났다. 잠 못 주무셨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문제는 개회사를 한참 하시더니 갑자기 버벅거리기 시작한 것. 저러실 분이 아닌데 이상하다 싶었는데, 나중에 이유를 알고 보니, 개회사 연설 원고 마지막 장이 누락되었던 것이다.


연설문을 한참 넘겨가며 연설하다가 페이지를 넘기니 마지막 원고가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장도 반 이상 원고를 쓰셨다는데... 그야말로 머리 속이 하얗게 되는 경험을 하셨다고. 다행히 자주 하던 이야기에, 영어야 거의 모국어 수준으로 하는 분이니 즉흥적으로 연설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ICM에 대한, 그리고 세계 수학계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는 분이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이어서 대망의 시상식. 도비시 회장이 연단으로 나와 필즈 상 수상자를 발표하였다. 수상자 발표 동영상이 뜨도록 도비시 회장이 마법사처럼 손을 흔들어서 청중들을 웃겼다. 필즈 메달이 화면에 나오더니, 메달 아래 쪽에 새겨진 이름이 나타났다. 알파벳 순서로 호명되는 관례에 따라 첫 수상자는 브라질의 아르투르 아빌라(Artur Avlia). 만 35세. 사실 아빌라는 2010년 ICM 때도 유력한 수상 후보였다. 그때 수상자로 선정되지 않은 이유가 너무 젊어서 그런 것 아니냐는 뒷말이 좀 있을 정도였다.


이번 대회부터는 사이먼스 제단의 후원으로 수상자들을 소개하는 짧은 동영상을 상영하기로 하였다. 아빌라가 자신의 연구 분야인 동역학계(dynamical system)에 대하여 소개하고 수상 소감을 이야기하였다. 다른 것보다 코파카바나 해변 모래밭을 맨발로 걸으며 연구한다는 말에는 꽤 부러웠다.


두 번째 수상자는 미국의 만줄 바르가바(Majul Bhargava). 전공은 정수론. 인도 이민 2세로 캐나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다. 1974년 8월 8일생이니 수상일 기준으로는 만 40세를 넘었지만, 필즈 상 수상 조건은 ICM이 개최되는 해의 1월 1일에 만 40세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므로 수상 가능하다. 바르가바도 2010년에 유력한 수상 후보였다. 바르가바는 프린스턴 대학 박사 학위 논문부터 대박이었던, 수학계의 수퍼스타 가운데 한 명이다. 인도 전통 악기인 타블라(tabla)의 명인급 연주자이기도 한데, 동영상도 타블라 연주 장면으로 시작하였다.


세 번째 수상자는 오스트리아의 마르틴 하이러(Martin Hairer). 만 38세. 이번 필즈 상 수상자 가운데 가장 의외의 인물이었다. 필즈 상 수상자는 대개 ICM의 기조 강연(plenary lecture) 연사로 초청되는데, 하이러의 경우 기조 강연보다 한 단계 아래로 평가되는 초청 강연(invited lecture) 연사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다른 수상자에 비해 실력이 떨어진다거나 한 것은 아니고, 그의 연구 분야인 확률편미분방정식(stochastic PDE)이 수학계의 전통적인 분야와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네 번째 수상자는 이란의 마리암 미르자카니(Maryam Mirzakhani). 만 37세. 필즈 상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수상자이다. 이슬람권 최초이기도 하다. 게다가 IMU 최초의 여성 회장이 주관하는 ICM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최초의 여성 수상자에게 필즈 상을 수여하니 정말로 ICM에서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다음 날 발행될 ICM 2014 신문. 편집분과 겸임위원이어서 발간 예정인 신문을 미리 볼 수 있었다.


이어서, 전산 수학 분야에 수여되는 네반린나 메달(Nevanlinna medal) 수상자가 호명되었다. 인도의 수바시 코트(Subhash Khot). 만 36세. 네반린나 상 또한 필즈 상처럼 만 40세 이하의 수학자에게 수여된다. 이 상은 핀란드 수학회에서 후원하는 것으로, 핀란드 수학자 롤프 네반린나(Rolf Navanlinna)의 이름을 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수학자의 이름을 붙인 상을 ICM에서 수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섯 수상자에 대한 시상식이 끝나고, 이어서 가우스 상(Gauss prize)과 천 상(Chern prize)의 수상자 발표가 있었다. 가우스 상은 응용 수학 분야에 주어지는 상으로, 독일 수학회에서 후원하고 있다. 2006년부터 수여되어, 올해가 세 번째이다. 수상자는 미국의 스탠리 오셔(Stanley Osher). 개막식 귀빈석에 어깨를 드러낸 튜브탑 원피스 차림의 젊은 여성이 앉아 있었는데, 오셔 교수가 호명되자 환호성을 질러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오셔 교수 부인.


천 상은 유명한 수학자 천싱선(Chern Shiing-Shen)의 이름을 딴 상으로 수학 공로상에 해당한다. 시상은 천 메달 재단(Chern Medal Foundation)에서 하며 사이먼스 재단에서 후원하고 있다. 그래서 시상식에는 천싱선의 딸과 제임스 사이먼스(James Simons)가 함께 단상에 올라와 상을 수여하였다. 수상자는 미국의 필립 그리피스(Phillip Griffiths). 천 상의 상금은 25만 달러인데, 특이하게도 같은 금액을 수상자가 지정하는 단체에 기부한다.


시상식이 끝나고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이 이어졌다. 2010년 인도 ICM에서 인도 대통령이 하는 연설은 속칭 간지가 철철 넘쳤다. 0의 발견부터 시작하여 고대 인도인이 이룩한 어마어마한 수학적 업적을 나열하는데 누가 기죽지 않았으랴. 그 연설을 들으면서, 4년 후 우리나라 대통령은 어떻게 연설해야 할지 생각하니 참으로 답답하였다. 우리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위대한 수학적 성취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연설할 수 있는 나라는 따지고 보면 몇 나라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계 수학계에서 우리나라의 독특한 점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나라가 이루었던 경제 발전처럼, 무에서 시작하여 지금 수준에 이른 우리나라 수학계의 발전이 아닐까? 1981년에 처음 IMU 1군에 가입하여, 1993년 2군 승급, 그리고 2007년에 전례 없는 두 단계 승급으로 4군에 오른 것은 세계 수학계에 자랑할 만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발전상을 인정 받았기에 우리나라가 ICM을 유치할 수도 있었고. 대통령 연설도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대통령 연설이 끝난 후, 다시 연단에 선 IMU 도비시 회장이 릴라바티(Leelavati) 상 수상자를 발표하였다. 이 상은 인도 수학회에서 후원하는 것으로, 수학 대중화에 공헌한 인물에게 수여된다. 2010년 첫 수상자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유명한 사이먼 싱(Simon Singh)이었고 이번 수상자는 아르헨티나의 아드리안 파엔사(Adrián Paenza). 릴라바티 상 시상식은 폐막식 때 진행된다.


이어 천 상에 대한 설명과 함께, 수상자인 그리피스가 아프리카 지역의 수학교육을 위하여 African Mathematics Millennium Science Initiative (AMMSI)라는 단체를 지정하였음을 알리고 상금 전달식이 있었다. 다음으로 MENAO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MENAO는 Mathematics in Emerging Nations: Achievements and Opportunities의 머릿글자로, 개발도상국 수학자들을 지원하는 행사이다. 우리나라가 ICM을 유치하면서, 선진국들의 도움으로 우리나라의 수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개발도상국의 수학 발전을 돕겠다는 뜻에서 1000명의 개발도상국 수학자들을 초청하는 NANUM 프로그램을 제시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IMU의 큰 관심을 끌어, 개발도상국의 수학 발전을 지원하는 제도로 MENAO가 출범하게 되었다.


도비시 회장에 이어 그뢰첼 사무총장이 연단에 나와 현황 보고를 하였다. 각 상의 수상자 선정 위원 명단 보고에 이어 8월 11일과 12일에 있었던 IMU 총회 결과 보고가 있었다. 2015년부터 4년 동안 IMU를 이끌어 갈 새 회장단이 소개되었다. IMU 신임 회장은 일본의 모리 시게후미(Mori Shigefumi). 1990년 필즈 상 수상자이다. 그리고 박형주 ICM 2014 조직위원장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IMU 위원으로 선정되었다.


너무 길어져서 일단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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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uzzlist
2014. 9. 5. 17:57

ICM 2014 개막 하루 전 Math2014. 9. 5. 17:57

8월 13일부터 8월 21일까지 9일 동안 서울 COEX에서 개최되었던 세계 수학자 대회(ICM, 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지난 대회인 인도 하이데라바드(Hyderabad) ICM 2010에 참석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개최될 ICM은 어떻게 해야 잘 진행될지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성공적인 대회", "최고의 대회"라고 평가하여 다행이다 싶다. 나는 이번 ICM의 한국 조직위원회 문화분과 위원으로 행사 진행에 참여하였다. 조직위원이었기에 알 수 있었던 행사 막후에서 벌어진 예상 밖의 사건사고들을 기록해 두는 게 좋겠다 싶어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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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일. ICM 개막 전날이다. 8월 11일까지 경주에서 위성학회(satellite conference)를 마치고 12일 오후에 식구들과 함께 KTX를 탔다. 위성학회란 ICM 기간을 전후로 하여, 각 세부 전공별로 진행되는 학회를 말한다. ICM이 워낙 대규모 학회이다 보니, 연구 발표가 진행되는 분야가 아무래도 크게 나누어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세부 전공별로 심도 있는 발표가 진행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ICM 기간 전이나 후에 우리나라 각지에서, 또 인근 국가에서 위성학회를 진행한다. ICM에 참석하는 김에 세부 학회를 진행하는 것이다.


식구들과 함께 간 이유는 큰애에게 ICM이 어떤 곳인지 보여 주기 위해서...는 아니고 그냥 놀러간 거다. 우리 애가 중학생만 되어도 동반자로 등록하고 ICM 구경시켜 주겠는데,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을 데리고 가 봐야...


처음에는 고등과학원(KIAS)에 숙소를 잡으려고 했는데, 마치 조직위원회에서 지방에서 오는 조직위원들에게는 가까운 호텔 방을 잡아준다고 연락이 왔다. 그런데, 조직위원회에 돈이 남아도는 게 아니어서, 그리고 예산 처리 규정상 2인 1실로 지원해 준다고 한다. 그러니까 같이 방 쓸 조직위원 한 명을 확보하라는 뜻이다.


식구들 데려가는 나로서는 그럴 수가 없어서 조직위원회에 물어보니, 가족이 함께 묵는 경우에는 조직위원 한 명만 지원하고 식구들 숙박비는 따로 내야 한단다. 그래서 얼마를 더 내야 하냐고 물어보니 1박에 8만원. 식구들은 6일 정도 머무를 예정이니, 48만원을 따로 내야 한다. 좀 부담스러워서 다른 곳은 없냐고 물어보니 건국대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원래 2인 1실인 방을 혼자 쓰는 거라 가족들도 같이 묵을 수 있다고 해서, 여기로 잡아달라고 부탁했는데, 이게 큰 실수였다.


9일 묵을 엄청난 짐을 싸 들고 건국대 기숙사에 도착하여 등록 데스크에 갔더니, "여기는 기숙사여서 남녀가 같은 방에 묵을 수 없습니다"라고 한다. 분명히 담당 직원에게 가족들 함께 묵어도 되냐고 물어보고 결정한 숙소인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나중에 보니, 외국에서 온 수학자 부부도 따로 방을 잡아야 하는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남녀 기숙사가 분리되어 있다고 공고했으면 좋았을 텐데, 조직위원회에서 이런 경우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튼 숙소를 다시 구해야 될 상황이라 담당 직원에게 전화 걸어 다시 호텔로 잡아달라고 했지만 있을 리가 있나. 고등과학원도 이미 다 차서 숙소가 없는 상황이고. 할수없이 주변 호텔이나 레지던스를 알아보던 중에 건국대 기숙사 관리 업체 직원 한 분이 사정을 듣고는 빈 방을 하나 구해 주었다. 대신 8월 18일에는 체크아웃 하는 조건으로. 그래서 다행히 방은 구했는데, 들어가 보니 너무 작다. 역시 돈 좀 더 내고 다른 숙소를 구하는 게 정답이었던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방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거의 저녁 8시. 원래 COEX에서 ICM 전야 리셉션이 있어서 거기 갈 생각이었는데 너무 늦어져서 그냥 근처 식당에서 저녁 해결하고 들어왔다. 나중에 들어보니 리셉션 음식이 아주 맛있어서 다들 만족해 했다고 한다. 한편, 개막 전날이라 조직위원들은 초긴장 상태. 개막식 리허설 하느라 행사기획위원회는 12시 다 돼서야 집에 갈 수 있었다고. 다른 분과도 다들 고생했지만, 행사 기간 내내 행사기획위원회는 정말정말 고생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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