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사사과정 전국발표회 Life in campus2013. 12. 18. 22:15
지난 12월 7일 2013년 사사과정 전국발표회가 KAIST에서 개최되었다.
나는 출장 때문에 가지 못하고, 나랑 같이 공부했던 중학생 여섯 명 가운데 세 명이 발표자로 영재원 직원들과 함께 참석했다. 결과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학생들에게 들어보니 뭔가 상황이 이상했다.
우리 팀의 주제는 "프로베니우스 수(Frobenius number)". 이건 중학생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 사사과정 주제로 아주 적절했다. 프로베니우스 수에 대한 연구가 다양해서, 학생들과 함께 논문을 읽고 세미나 형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중학생들이 영어 논문을 읽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모 대학 교육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 몇 편을 출력해 나누어 주었다. 교육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은 한글로 되어 있는 데다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아서 영재원 학생들이라면 충분히 읽고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우리 팀 학생들은 내용을 잘 이해했을 뿐 아니라, 논문에서 잘못된 부분을 알아서 고쳐가며 발표할 정도였다.
프로베니우스 수의 기본적인 내용과 연구 방법을 이해한 다음, 우리가 연구할 독창적인 주제를 선정해야 했다. 이것까지는 어려울 것 같아서 내가 몇 개 주제를 제안했는데, 결국에는 학생이 제안했던 주제가 선정되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풀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다음 몇 번의 모임에서 특수한 경우가 깔끔하게 해결되어서 학생들 실력에 완전 감탄했다. 일반적인 경우까지 완벽하게 해결한다면 바로 학술지 게재 가능한 정도.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워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고, 11월초까지 일반적인 경우의 한쪽 방향만 해결되었다.
약간 아쉽긴 했지만, 완벽하지 않은 편이 오히려 학생들 솜씨라는 증거가 될 것 같아 그대로 발표 준비를 했다. 여기까지 내가 한 것이라고는 프로베니우스 수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논문 여남은 편을 출력해서 나누어 준 것이 다였다. 사실 나도 일반적인 경우를 증명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도무지 감도 못 잡고 있던 차에 학생들이 한쪽 방향을 해결했으니, 정말로 난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11월 22일까지 결과 논문을 제출하게 되어 있어서, 이건 내가 정리하였다. 중학생들이 논문 형식으로 쓰는 건 무리였으니까. 지도교수도 무언가 하는 일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학생들이 교육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으로 세미나 수업을 했다는 이야기며, 학생들 스스로 주제를 선정하고 문제를 해결했다는 이야기를 써넣었다. 이번 전국발표회의 핵심 평가 요소가 "학생들 스스로 하였는가?"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준비를 시켜놓고 12월 7일 전국발표회를 기다렸다. 이 날짜는 사실 중학생들 기말고사 기간과 겹쳐서 항의가 많았다. 예년처럼 방학 때인 1월에 하면 발표 준비에 시간도 더 들일 수 있으니 좋을 텐데, 올해부터 전국발표회를 주관하는 창의재단에서는 일방적으로 날짜를 통보하고는 모든 의견을 묵살해 버렸다.
창의재단 일처리가 왜 저런가 했는데, 결국 전국발표회가 완전 엉터리로 진행되었다. 원래 사사과정 전국발표회는 사사과정을 진행한 영재원이 일종의 축제처럼 진행해 왔다. 그래서 심사가 빡빡하지도 않았고, 작년 같은 경우는 참가만 해도 작은 상 하나는 주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걸 창의재단에서 담당하면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상" 같은 걸 주는 권위 있는 대회로 만들면서 문제가 생겼다.
평가의 최우선 기준이 "학생들이 스스로 한 것인가"가 된 것까지는 좋은데, 이걸 고작 20분 동안 심사위원 세 명이 판정하는 형태가 된 것. 결과 논문 자체는 미리 받지만, 그 내용이 새로운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 발표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내용에 대해 물어서 판정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심사위원이 덮어놓고 의심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 학생들이 발표를 하니, "중학생이 석사 학위 논문을 읽고 이해한다는 건 믿을 수 없다"라는 식으로 학생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다. 정 의심스러우면 문제의 학위 논문에 대해 물어보면 될 것 아닌가. 그런데 중학생들에게 마치 취조하듯이 진행했으니 발표한 팀들마다 멘붕 상태가 될 수밖에. 심사위원 세 명이 한 조로 두 개조였다고 하는데, 다른 조는 오히려 분위기가 좋았다고 하니 우리 학생들이 수모를 당한 건 줄을 잘못 선 탓이려나.
지도교수가 같이 있으면 그나마 좀 나았을 텐데, 이번 발표회에서는 발표하는 학생들만 들어가서 일방적으로 당하고 나오는 형태였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교수도 교육자일진대, 학생들, 그것도 중학생들에게 어떻게 저런 식으로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이건 창의재단이 일처리를 멍청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발표 날짜를 잡는 것도 그렇고.
이런 식이면 사사과정 전국발표회에 참석하는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오히려 학생들에게 상처만 줄 것 같다. 창의재단이 문제를 인식해서 개선할 것 같지도 않으니, 다음부터는 이 따위 대회는 참가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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