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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7. 12:16

ICM 2014 첫째 날 - 개막식 Math2014. 9. 7. 12:16

대망의 ICM 개막식. ICM의 가장 큰 이벤트 가운데 하나는 뭐니뭐니 해도 필즈 메달(Fields medal) 수상식. 관례적으로 개최 국가의 국가 원수가 상을 수여하게 되어 있어서, 대통령 경호 문제로 사전 등록자만 개막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늦을까 봐 아침 일찍 COEX에 도착하여 사전등록처에 가서 이름표와 각종 자료를 받았다. 아침 8시도 안 됐는데 이미 사람들로 북적북적하였다. 개막식장에 들어가니 귀빈석 옆에 조직위원용 자리가 예약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코앞에서 필즈 상 수상자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코앞에서 보는 정도가 아니라 좌석 구역 사이 통로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필즈 상 수상자들이 앉아 있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증명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닌 후배


개막식 전에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 가운데 하나는 필즈 상 수상자 명단이 유출된 것. ICM에서는 극적 효과를 위해 시상식 전까지는 수상자를 공개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새벽에 수상자가 알려져서 위키피디어 항목에까지 올라가 있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나중에 이 사건을 가지고 조직위원회를 비난하기도 했는데,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쓴 자극적인 기사였다.


진상은 이런 거였다. 개막식이 끝나면 필즈 상 수상자가 세계수학연맹(IMU) 홈페이지에 게시되는데, 담당자가 개막식 직후에 바로 공개하기 위하여 홈페이지 내용을 다 만들어서 서버에 올려 놓은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메인 홈페이지에서 해당 항목에 대한 링크만 설정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 그런데 사람들이 해당 항목의 주소를 추측해서 넣어 보니 떡 하니 수상자 명단이 떠 버린 것이다. 이건 명백히 IMU 측 실수.


개막식까지 비밀 유지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데다, 이런 비밀주의가 수상자의 국가 언론에서 자료 만드는 데도 방해가 되는 일이라 앞으로는 개막식 두 달 정도 전에 먼저 공개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실제로 예전 마드리드 ICM 2006에서는 테렌스 타오(Terence Tao)의 수상을 전혀 몰랐던 호주의 공영 방송 사장이 총리에게 박살나는 일도 있었다고.


개막식은 가야금과 해금 연주로 시작하였다. 잠시 후 서울대 수학과 임선희 교수의 사회로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행사가 행사다 보니 임선희 교수는 새벽에 미장원에서 거금을 들여 머리까지 하고 왔다. 개막 동영상이 나올 때는 국악이 나오는 장면에서 무용단이 올라와 공연을 하였다. 저 동영상 최초 시사 때 나도 행사진행위원들과 함께 참관하였는데, 그때는 미완성이기도 했고 어색한 부분도 꽤 있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개막식 때 보니 음향도 좋고 내용도 괜찮아 완성도가 높았다. 제작 감독이 "완성작은 볼 만할 겁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만했다.


개막식 시작 전 담소를 나누고 있는 IMU 사무총장  Grötschel, 1998년 필즈 상 수상자 Gowers, 2003-04 미국 수학회장 Eisenbud.


공연 도중 처용무가 있었는데, 마리암 미르자카니(Maryam Mirzakhani) 교수의 세 살 딸이 처용 얼굴을 보고 무서워 하며 엄청나게 울었다. 아빠가 아무리 안고 돌아서 있어도 굳이 다시 무대로 고개를 돌려보면서 손가락질하며 울었다. 결국 필즈 상 수상자 자리에 앉아 있던 엄마가 와서 안고 나가야 했다.


Mirzakhani 교수의 남편과 딸. 오른쪽은 홀수 Goldbach 추측을 증명한 Harald Helfgott.        문제의 그 처용무
 


대통령 입장은 전파 방해와 함께 시작되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이다 보니 핸드폰을 쓸 수 없도록 전파 방해를 하는 것이다. 잠시 후 박근혜 대통령, 잉그리드 도비시(Ingrid Daubechies) IMU 회장, 박형주 조직위원장,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마르틴 그뢰첼(Martin Grötschel) IMU 사무총장이 입장하였다.


박형주 조직위원장의 개회사로 VIP들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수학자 가운데 최고 미남이라 할 만한 조직위원장님이 이 날은 어쩐지 평소의 샤방한 모습 대신 얼굴도 까칠해 보이고 머리도 다듬지 않은 티가 너무 많이 났다. 잠 못 주무셨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문제는 개회사를 한참 하시더니 갑자기 버벅거리기 시작한 것. 저러실 분이 아닌데 이상하다 싶었는데, 나중에 이유를 알고 보니, 개회사 연설 원고 마지막 장이 누락되었던 것이다.


연설문을 한참 넘겨가며 연설하다가 페이지를 넘기니 마지막 원고가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장도 반 이상 원고를 쓰셨다는데... 그야말로 머리 속이 하얗게 되는 경험을 하셨다고. 다행히 자주 하던 이야기에, 영어야 거의 모국어 수준으로 하는 분이니 즉흥적으로 연설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ICM에 대한, 그리고 세계 수학계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는 분이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이어서 대망의 시상식. 도비시 회장이 연단으로 나와 필즈 상 수상자를 발표하였다. 수상자 발표 동영상이 뜨도록 도비시 회장이 마법사처럼 손을 흔들어서 청중들을 웃겼다. 필즈 메달이 화면에 나오더니, 메달 아래 쪽에 새겨진 이름이 나타났다. 알파벳 순서로 호명되는 관례에 따라 첫 수상자는 브라질의 아르투르 아빌라(Artur Avlia). 만 35세. 사실 아빌라는 2010년 ICM 때도 유력한 수상 후보였다. 그때 수상자로 선정되지 않은 이유가 너무 젊어서 그런 것 아니냐는 뒷말이 좀 있을 정도였다.


이번 대회부터는 사이먼스 제단의 후원으로 수상자들을 소개하는 짧은 동영상을 상영하기로 하였다. 아빌라가 자신의 연구 분야인 동역학계(dynamical system)에 대하여 소개하고 수상 소감을 이야기하였다. 다른 것보다 코파카바나 해변 모래밭을 맨발로 걸으며 연구한다는 말에는 꽤 부러웠다.


두 번째 수상자는 미국의 만줄 바르가바(Majul Bhargava). 전공은 정수론. 인도 이민 2세로 캐나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다. 1974년 8월 8일생이니 수상일 기준으로는 만 40세를 넘었지만, 필즈 상 수상 조건은 ICM이 개최되는 해의 1월 1일에 만 40세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므로 수상 가능하다. 바르가바도 2010년에 유력한 수상 후보였다. 바르가바는 프린스턴 대학 박사 학위 논문부터 대박이었던, 수학계의 수퍼스타 가운데 한 명이다. 인도 전통 악기인 타블라(tabla)의 명인급 연주자이기도 한데, 동영상도 타블라 연주 장면으로 시작하였다.


세 번째 수상자는 오스트리아의 마르틴 하이러(Martin Hairer). 만 38세. 이번 필즈 상 수상자 가운데 가장 의외의 인물이었다. 필즈 상 수상자는 대개 ICM의 기조 강연(plenary lecture) 연사로 초청되는데, 하이러의 경우 기조 강연보다 한 단계 아래로 평가되는 초청 강연(invited lecture) 연사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다른 수상자에 비해 실력이 떨어진다거나 한 것은 아니고, 그의 연구 분야인 확률편미분방정식(stochastic PDE)이 수학계의 전통적인 분야와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네 번째 수상자는 이란의 마리암 미르자카니(Maryam Mirzakhani). 만 37세. 필즈 상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수상자이다. 이슬람권 최초이기도 하다. 게다가 IMU 최초의 여성 회장이 주관하는 ICM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최초의 여성 수상자에게 필즈 상을 수여하니 정말로 ICM에서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다음 날 발행될 ICM 2014 신문. 편집분과 겸임위원이어서 발간 예정인 신문을 미리 볼 수 있었다.


이어서, 전산 수학 분야에 수여되는 네반린나 메달(Nevanlinna medal) 수상자가 호명되었다. 인도의 수바시 코트(Subhash Khot). 만 36세. 네반린나 상 또한 필즈 상처럼 만 40세 이하의 수학자에게 수여된다. 이 상은 핀란드 수학회에서 후원하는 것으로, 핀란드 수학자 롤프 네반린나(Rolf Navanlinna)의 이름을 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수학자의 이름을 붙인 상을 ICM에서 수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섯 수상자에 대한 시상식이 끝나고, 이어서 가우스 상(Gauss prize)과 천 상(Chern prize)의 수상자 발표가 있었다. 가우스 상은 응용 수학 분야에 주어지는 상으로, 독일 수학회에서 후원하고 있다. 2006년부터 수여되어, 올해가 세 번째이다. 수상자는 미국의 스탠리 오셔(Stanley Osher). 개막식 귀빈석에 어깨를 드러낸 튜브탑 원피스 차림의 젊은 여성이 앉아 있었는데, 오셔 교수가 호명되자 환호성을 질러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오셔 교수 부인.


천 상은 유명한 수학자 천싱선(Chern Shiing-Shen)의 이름을 딴 상으로 수학 공로상에 해당한다. 시상은 천 메달 재단(Chern Medal Foundation)에서 하며 사이먼스 재단에서 후원하고 있다. 그래서 시상식에는 천싱선의 딸과 제임스 사이먼스(James Simons)가 함께 단상에 올라와 상을 수여하였다. 수상자는 미국의 필립 그리피스(Phillip Griffiths). 천 상의 상금은 25만 달러인데, 특이하게도 같은 금액을 수상자가 지정하는 단체에 기부한다.


시상식이 끝나고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이 이어졌다. 2010년 인도 ICM에서 인도 대통령이 하는 연설은 속칭 간지가 철철 넘쳤다. 0의 발견부터 시작하여 고대 인도인이 이룩한 어마어마한 수학적 업적을 나열하는데 누가 기죽지 않았으랴. 그 연설을 들으면서, 4년 후 우리나라 대통령은 어떻게 연설해야 할지 생각하니 참으로 답답하였다. 우리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위대한 수학적 성취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연설할 수 있는 나라는 따지고 보면 몇 나라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계 수학계에서 우리나라의 독특한 점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나라가 이루었던 경제 발전처럼, 무에서 시작하여 지금 수준에 이른 우리나라 수학계의 발전이 아닐까? 1981년에 처음 IMU 1군에 가입하여, 1993년 2군 승급, 그리고 2007년에 전례 없는 두 단계 승급으로 4군에 오른 것은 세계 수학계에 자랑할 만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발전상을 인정 받았기에 우리나라가 ICM을 유치할 수도 있었고. 대통령 연설도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대통령 연설이 끝난 후, 다시 연단에 선 IMU 도비시 회장이 릴라바티(Leelavati) 상 수상자를 발표하였다. 이 상은 인도 수학회에서 후원하는 것으로, 수학 대중화에 공헌한 인물에게 수여된다. 2010년 첫 수상자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유명한 사이먼 싱(Simon Singh)이었고 이번 수상자는 아르헨티나의 아드리안 파엔사(Adrián Paenza). 릴라바티 상 시상식은 폐막식 때 진행된다.


이어 천 상에 대한 설명과 함께, 수상자인 그리피스가 아프리카 지역의 수학교육을 위하여 African Mathematics Millennium Science Initiative (AMMSI)라는 단체를 지정하였음을 알리고 상금 전달식이 있었다. 다음으로 MENAO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MENAO는 Mathematics in Emerging Nations: Achievements and Opportunities의 머릿글자로, 개발도상국 수학자들을 지원하는 행사이다. 우리나라가 ICM을 유치하면서, 선진국들의 도움으로 우리나라의 수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개발도상국의 수학 발전을 돕겠다는 뜻에서 1000명의 개발도상국 수학자들을 초청하는 NANUM 프로그램을 제시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IMU의 큰 관심을 끌어, 개발도상국의 수학 발전을 지원하는 제도로 MENAO가 출범하게 되었다.


도비시 회장에 이어 그뢰첼 사무총장이 연단에 나와 현황 보고를 하였다. 각 상의 수상자 선정 위원 명단 보고에 이어 8월 11일과 12일에 있었던 IMU 총회 결과 보고가 있었다. 2015년부터 4년 동안 IMU를 이끌어 갈 새 회장단이 소개되었다. IMU 신임 회장은 일본의 모리 시게후미(Mori Shigefumi). 1990년 필즈 상 수상자이다. 그리고 박형주 ICM 2014 조직위원장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IMU 위원으로 선정되었다.


너무 길어져서 일단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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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uzz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