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M 2014 첫째 날 - 개막식 이후 Math2014. 9. 10. 18:44
개막식이 끝나고 점심 시간. 점심에는 도시락을 제공하기로 하였다. 하필이면 이 기간에 COEX 식당가 공사가 덜 끝나는 바람에 밥 먹는 게 심각한 문제였다. 원래는 ICM 개막 전에 공사를 끝내기로 했는데 그러지 못한 COEX 쪽의 잘못. 그래서 COEX에서 사과의 뜻으로 큰 홀 두 개를 무상으로 빌려줬다. 점심 도시락을 이 홀에서 제공하였다.
지난 인도 ICM 2010에서도 개막식 직후 점심은 도시락을 제공했다. 샌드위치와 카레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이었고, 대부분 별미라는 생각에 카레를 주문했는데, 이게 먹어 보니 괴식에 가까웠다. 그래서 다음 날부터 유료 점심은 대부분 샌드위치로 선택. 그러다 보니 조금 늦으면 매일 새로운 종류의 괴식 카레만 남는 문제가 있었다. 어디 나가 먹을 데도 없었는데.
우리 쪽에서 제공하기로 한 도시락도 처음에는 영 맛이 없어서 한번 퇴짜를 놓고 새 업체를 선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역시 행사준비 분과위원들 고생이 많았다. 동영상 시사하는 날 같이 시식하기로 해서 기다리다가, 결국 나는 기차 시간 때문에 아무것도 못 먹었다. ㅠㅠ
아무튼 이번에 제공된 점심은 꽤 맛있었고, 무엇보다 홀이 넓어서 편히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인도에서는 홀에 탁자 몇 개만 있어서 대부분 바닥에 주저 앉아 점심을 먹어야 했으니, 인도 ICM 갔다 고생했던 사람들은 모두들 만족해 했을 듯. 실제로 이 공간은 커피도 무한 제공하고 있어서 휴식 공간으로도 좋아서 ICM 기간 내내 호평이었다.
오후에는 필즈 상 수상자에 대한 Laudation이 있었다. Laudation은 "칭송"의 뜻으로 필즈 상 수상자의 업적에 대해 대가들이 설명하는 시간이다. 아빌라(Avila)에 대하여 에티엔 기(Etienne Ghys)가, 바르가바(Bhargava)에 대하여 베네딕트 그로스(Benedict Gross)가, 하이러(Hairer)에 대하여 오페르 자이투니(Ofer Zeitouni)가, 그리고 미르자카니(Mirzakhani)에 대하여 커티스 맥멀런(Curtis McMullen)이 강연을 맡았다. 마지막으로 네반린나 상 수상자인 수바시 코트(Subhash Khot)에 대한 칭송은 산제브 아로라(Sanjeev Arora)가 담당하였다. 특히 필즈 상 수상자인 맥멀런이 제자의 필즈 상 수상 업적을 설명하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이로써 사제가 필즈 상을 받은 경우가 Schwartz-Grothendieck, Grothendieck-Deligne, Atiyah-Donaldson, Lions-Villani에 이어 다섯 번째.
저녁에는 한국 수학의 밤(Korean Math Night) 행사가 있었다. ICM 한국 조직위원들과 IMU 위원들, VIP들을 초청하여 진행한 만찬이었다. 의자 없이 서서 가볍게 먹는 행사였는데, 무거운 가방 든 사람들이 많아 좀 힘들고 어수선했다. 이어서 8시부터 대중 강연.
첫날의 가장 큰 이벤트는 개막식이겠지만, 이번에는 저녁 대중 강연도 큰 이벤트였다. 무엇보다 연사가 그 유명한 제임스 사이먼스(James Simons)였으니. 세계 최고의 펀드 매니저 가운데 한 명으로, 젊어서 일급 수학자였던 사람이 어느날 월가(Wall street)로 진출하여 최고의 펀드 매니저가 되고, 엄청난 재산을 모은 다음 수학 발전을 위하여 거액을 기부하고 있으니 확실히 화제의 인물이라 할 만하다.
베이징 ICM 2002에서는 존 내시(John Nash)와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이 대중 강연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우리도 그 정도의 인물이 대중 강연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물망에 오른 인물이 사이먼스 회장. 문제는 너무 바쁜 사람이라 ICM 기간에 올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실제로 비서진에서는 절대 참석 불가라고 하였으나, 사이먼스 본인이 직접 일정 조정하고 자가용 비행기로 날아왔다.
유명한 인물이다 보니 청중도 엄청나게 많았다. 유명한 수학자들도 많았고. 이 강연은 내가 속한 문화분과 담당 업무라 한국 수학의 밤 중간에 강연장에 올라가 장내 정리하고 리허설. 원래는 강연 원고를 받아서 번역 자막을 올릴 생각이었으나, 강연 원고 없이 강연한다고 해서 통역사가 통역하는 대로 속기사가 받아적어서 자막을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문제는 통역사는 수학을 잘 모른다는 점. 금융수학 전문가가 한 명 붙어서 자막을 수정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실시간으로 진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Stokes' Theorem"을 "스토크스 정리"가 아니라 "주식 이론"으로 번역하는 사고도 있었다. 수학자 "Yau"를 "야후(Yahoo)"로 번역하기도 하였고. "cohomology"는 "코호몰로지"로 제대로 나오기까지 한 다섯 가지 정도 버전으로 등장했다.하여간 이런 식으로 방송 사고에 가까운 번역이 난무하다 보니 이 강연은 다 찍어 놓고도 VOD 공개를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자막이 안 보이는 버전으로 공개되어 있다.
중간에 자막이 안 뜨는 사고가 나서 통역팀에 가 보니, 속기사들 정말 정신 없이 타자를 치고 있었다. 저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번역을 기대하기는 힘들 수밖에 없어 보였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 시간이 되었는데, 금전적인 지원을 해 달라는 질문이 많았다. 사이먼스 회장이 그런 질문은 하지 말라는 말을 해야 할 정도. 사업을 하고 있는 수학과 선배 한 분은 "당신이 사업을 하는 데 있어 수학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느냐?"라는 질문을 꼭 하고 싶었다는데 질문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아 밀렸다고. 사실 그 선배부터 수학 전공했다는 이유로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다나. 그런데 자기가 아무리 얘기해 봐야 권위가 없다면서 사이먼스 회장의 대답을 인용하고 싶었다고.
강연이 끝나고 나니 엄청난 인파가 사인 요청을 해서 사이먼스 회장을 강연장 뒤편 직원 통로로 대피시켜서 내보내야했다. ICM 2014에서 사이먼스가 대중 강연을 하는 것에 대해 안 좋게 평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은 너무 돈만 밝히는 나라여서, 사이먼스처럼 돈 많은 사람이 "수학 잘 하면 돈 잘 번다"는 식으로 강연하게 하는 것이라는 평이었다. 정말로 부에만 관심이 있어서 사이먼스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수학이 어떠한 역할을 했으며, 이제 그 수학에 어떤 식으로 보답하고 있는지를 사이먼스 같은 대가의 강연을 통해 듣는다는 건 확실히 매력적인 일이 아닐까? 수학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가 주제였다면 나쁜 평을 할 수도 있겠으나, 일반 대중, 그것도 학생들이 많은 대중을 상대로 수학에 대해 설명하는 강연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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