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DS에 접속만 하면 제일 먼저 staire의 글부터 찾아 읽었으니, 그곳의 글이라고 해서 새로운 것은 없었지만, 저렇게 그의 글들을 모아두니 감회가 새롭다.
너무 일찍 가버린 staire. 반이정 님의 글을 읽으니 그가 너무나 그립다.
[ SquareMemo ] in KIDS
글 쓴 이(By): pomp (PUZZLIST)
날 짜 (Date): 2005년 5월 31일 화요일 오후 11시 28분 08초
제 목(Title): Re: [부고] 스테어 (강민형) 별세
아직도... 아직도 믿기지가 않네요.
월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별 생각없이 키즈에 들어왔다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글을 보았습니다.
하필이면 논문 심사일이 코앞으로 닥쳐 일분일초가 아쉬울 때라
빈소에는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아니, 차마 빈소에 가서
스테어 형의 죽음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테어 형에 대해 처음 들었던 얘기는, 의대를 6년이나 다니고
때려 치운, 이해 안 되는 인간이라는 선생님들의 말씀이었습니다.
저와 같은 고3들에게는 이해 안 가는 정도가 아니라
도대체 어떻게 생긴 선배인지 신기했다는 게 그때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의대 공부 다 끝내놓고 왜 이러느냐?"는 질문에
"끝이라니요? 지금 그만 두지 않으면 평생 이 공부해야 할 텐데요"라고
대답했다는 얘기에 저와 친구들은 형이 진짜 멋진 사람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형을 처음 본 건 체력장 시험에서였습니다. "저 선배가 그 선배"라며
가리키는 친구들의 손끝에 보인 것은 엄청난 거구의 인물이었습니다.
어쩐지 외모 또한 날렵하고 멋지게 생겼을 것 같았던 우리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얘기해 보면 멋진 사람"일 것이란
기대는 여전했습니다.
그때 겁없이 형에게 말을 걸어볼 걸 그랬나 봅니다. 대학 생활에 대해,
또 삶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을 때였으니, 그때 형을 좀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아마 형을 통해 KIDS도 일찌감치 발을 들여놓았겠죠.
뒤늦게 들어온 키즈에서 누구보다도 저를 끌어들이고 몰입하게
만든 것은 스테어 형의 글이었습니다. 치열한 고민과 진지한 성찰이
묻어나는 형의 글은 언제나 키즈를 찾아오게 하는 힘이었고, 키즈에
접속할 때마다 게시판을 돌아다니며 staire 아이디를 찾는 게 낙이었습니다.
나중에 형이 문제의 바로 그 의대생 선배였다는 걸 알았을 때, 답답한 고3
교실에서 우리의 자잘한 고민들을 초월한 멋진 선배에 대해 들었던
바로 그때의 신선한 기분이 밀려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예전에 밤새워 술마시며 키즈 사람들과 수많은 얘기들을 나누던 때가
그립습니다. 어쩐지 스테어 형이 없으면 그 모임은 늘 썰렁한 느낌이었고
늦게라도 형이 와야 뭔가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 같았죠. 아마 다들
비슷한 생각들을 하지 않았을까요.
늦게 학교로 돌아와 공부하다보니, 키즈 오프 모임에는 전혀 참가를 못하다가
급기야 스테어 형의 빈소조차 못 가고 말았습니다.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서
형 한번 만나봤어야 하는데, 이렇게 어이없이 가 버릴 줄은...
며칠 동안 멍한 기분이더니, 오늘 저녁에서야 갑자기 스테어 형의 죽음이
이상할 정도로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밤늦게 연구실에서 집까지 걸어오면서
계속 스테어 형에 대한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가 않네요.
무언가 키즈 게시판에 넋두리라도 끼적여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
오자마자 키즈에 접속하고 편집기를 엽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두서 없이,
손가는 대로 아무 말이나 적어 봅니다.
한동안 키즈에 접속하기가 싫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테어 형의 죽음을
다시 상기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무엇보다 스테어 형 없는 키즈는 아무 재미도
없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스테어 형은 키즈 그 자체였으니까요.
눈물이 나서 더는 못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