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 입학한 이후, 중간에 병특 5년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학교를 떠나지 않았다. 2005년 여름에 학위를 받은 후, 지금까지 박사후연구원(PostDoctor, 포닥)을 한 곳도 여전히 서울대였으니까. 그러다 이번에 서울대가 아닌 곳으로 소속을 옮기게 되었다. 새로 포닥 자리를 얻은 곳은
고등과학원(KIAS)이다.
서울대 포닥이 2007년 9월까지여서 새 학기가 되면 어디 자리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 KIAS 계산과학부에 계신 박*주 선생님께서 지난 1월에 KIAS 포닥을 제시하셨다.
생각해 보면, 서울대 포닥부터 정말 운이 좋았다. 내가 졸업할 무렵은 BK21 사업 막바지여서, BK 포닥을 더 이상 뽑지 않는 바람에 사실 오갈데 없는 상황이어서 속을 많이 끓였다. 하도 갈 데가 없어서 6개월짜리 공대 포닥이라도 갈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다행히 선배 한 분이 학술진흥재단 해외 포닥으로 나가면서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급여도 비교적 높은 데다 강의도 자유로운 자리여서 거의 동급최강 수준의 포닥이었다.
포닥 자리 때문에 처음에는 한 학기 늦게 졸업할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나보다 한 학기 뒤에 졸업한 후배들이 포닥 자리 때문에 고생한 걸 보면 정말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신의 아들이라고 놀리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5년 동안 수학을 떠나 있었던 걸 생각하면...
어제 3월 2일이 공식적인 첫 출근일이어서, 각종 서류 작성에, 이메일 계정 만들고 연구실을 배정 받았다. 내 office mate는 이*규 박사. 지도 교수인 박*주 선생님은 미국 출장 중이셔서 다음 주에나 뵙는다. 이번에 새로 온 포닥인 최*영 박사, 김*원 박사와 함께 KIAS 원장인 김*원 박사님께 인사를 드렸다. 사실 대부분의 일이 오전에 끝날 줄 알고 오후에 다른 약속을 하나 잡았는데, 원장님 일정 때문에 3시에나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일정을 취소해야 했다.
원장님은 당신이 학위 논문 쓸 때의 얘기를 하면서, "박사 학위 논문 쓸 무렵, 해 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많았는데, 논문 때문에 해 볼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학위 받은 직후가 가장 이것저것 많이 해 볼 수 있는 좋은 때였다. KIAS가 바로 그런 기회가 되면 좋겠다. 하고 싶은 것들 마음대로 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인사를 마치고 차 한 잔 하자며 토론실에 갔더니, 웬 떡이 탁자에 놓여 있다. 최*영 박사는 KIAS에 visiting으로 자주 와서 상황을 잘 아는지라, 전혀 망설임 없이 떡을 집어 먹는다. 알고 보니, 그 시간이면 늘 간식을 준비해 둔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의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KIAS 정말 마음에 든다. ^^
한참 간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방송 카메라가 들어온다. 무슨 일일가 싶어 보니 YTN에서 촬영을 온 것이었다. 고등과학원의 일상을 찍으려는 것 같았다. 신임 포닥들이 서로 인사하며 잡담하는 장면이 고등과학원의 일상일 리는 없으니 우리는 얼른 자리를 떴다. 대신 카메라는 황*묵 선생님과 최*송 박사의 토의 장면을 찍었다. 두 사람 다 카메라 전혀 의식 안 하고 얘기를 나누었다. 어차피 진짜 촬영은 좀더 이따가 진행될 것 같았지만.
그나저나 지금 살고 있는 봉천동에서 KIAS까지 어떻게 다닐지 걱정이다. 이사를 가기도 쉽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