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오늘의 과학의 어제 (뭔가 부조화가...) 주제는 소수(素數)였다. 저자는 한서대 이광연 선생님.
그런데 댓글을 보니 좀 너무하다 싶은 글이 난무한다. 바로 "소수"가 "솟수"로 쓰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근거도 없는 황당한 소리를 시작했는지 모르겠는데, 너무나 자신만만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고 있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현행 맞춤법은 1988년에 당시 문교부에서 공포한 것으로, 1933년에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개정한 것이다. 이때에 바뀐 큰 변화 가운데 하나가 "-읍니다"를 "-습니다"로 바꾼 것이다. 늘 그렇듯이 주변 의견 무시하고 "-읍니다"를 고집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이건 잘 바꾼 규정 가운데 하나이다. 아무 생각 없이 "있읍니다"가 "있습니다"로 바뀌었으니, (아무 관련도 없는) "있음"마저 "있슴"으로 바뀐 걸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아진 황당한 부작용이 문제였긴 하지만.
88년 맞춤법에서 바뀐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사이시옷을 들 수 있다. 원래 사이시옷은 "소리" 때문에 정해진 것이다. 병원의 내과, 외과, 소아과 등등이 [내:꽈], [외:과], [소아꽈]로 소리나니까 된소리가 나게 하기 위해 "냇과", "욋과", "소앗과"로 쓰던 것이 개정 전의 맞춤법이었다. [소쑤]로 소리나던 素數를 "솟수"로 표기하였던 것도 이런 이유였다.
그러나 매번 사이시옷을 쓰는 것은 꽤 번거로울 뿐 아니라, 한자를 병기하면 사이시옷을 쓸 수 없고, 같은 글자를 쓰는 다른 단어에서 된소리가 나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개정 맞춤법에서는 원칙적으로 한자어에는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 쪽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옛날 책을 보면, 한자를 병기하는 경우, 냇과(內ㅅ科), 욋과(外ㅅ科)처럼 시옷을 중간에 넣는 형태로 사용하였다. 또, "냇과"와 "내국인"은 같은 한자 內를 쓰지만 한글 표기만 놓고 보면 다르다. 뒷글자를 된소리로 만드는 경우도 다르고. 따라서 표기의 편의성을 생각하면 같은 한자는 같은 글자로 나타내는 편이 좋다.
이런 문제는 한자어가 아닌 경우에도 다르지 않아서, 언제 사이시옷을 쓰고 안 쓰는지를 따져서 표기하는 것은 무척 번거로운 일이다. 한글이 한국어를 표기하는 데는 최적화되어 있는 문자 체계지만, 그렇다고 해서 철자가 모든 발음을 완벽하게 반영할 수는 없다. 이것은 세계 어느 글자든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를 할 바에야"에서 "바"는 [빠]로 소리나지만, "할부판매"의 "부"는 [뿌]로 소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작정 소리나는 대로 쓴다면, 오히려 읽기가 어려워지므로 형태를 많이 바꾸지 않으면서 소리를 반영하려면 "할 바에야"에서 "할"의 받침으로 ㄽ을 쓰든가, 훈민정음처럼 ㅭ을 써야 한다. 그렇지만 이것보다는 그냥 리을 받침을 쓰고 표준 발음을 따로 정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이처럼 철자는 어느 정도 타협을 할 수밖에 없다. 사이시옷 또한 글자의 모양은 많이 바꾸지 않으면서 발음의 변화를 나타내기 위해 도입된 타협의 산물이었다.
그렇다면 현행 맞춤법에서 제시하는 사이시옷에 대한 타협안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사이시옷은 합성어를 만드는 단어 사이에만 쓰이는데, 뒷 단어를 된소리가 되게 만들 때 받침이 없는 앞 단어 끝에 붙인다. 여기에 "콧물"처럼 [ㄴ] 소리가 덧날 때에도 쓴다.
그런데 매번 사이시옷을 쓰는 것은 번거롭지만 아예 없애기도 곤란해서, "냇과", "욋과", "소앗과" 같은 것부터 해결하기 위해 나온 방안이 바로 한자어+한자어에는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다는 규정이다. 이에 따라 "냇과, 욋과, 소앗과" 대신 "내과, 외과, 소아과"가 표준어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바꾸기가 어색했는지 다음 여섯 단어는 사이시옷을 쓰도록 한다.
국어학자들로서는 절묘한 타협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바람에 "솟수"로 쓰던 素數는 "소수"가 되어 버려, [소:수]로 발음하는 소수(小數)와 글로는 구별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겨 버렸다.
한편, 순우리말+한자어 또는 한자어+순우리말인 경우에는 여전히 사이시옷을 쓰도록 되어 있어서, 그 동안 "근사값", "절대값", "최대값"으로 잘 쓰고 있던 수학 용어를 "근삿값", "절댓값", "최댓값"으로 바꾸게 되었다. 맞춤법 규정만 놓고 보면 바꾸는 게 맞긴 하지만, 최근까지 이런 단어들은 전문용어로 취급하여 맞춤법 규정을 엄밀하게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예외 없이 사이시옷 규정을 지키도록 하는 바람에 어색한 표기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 바람에 교과서 수정하느라 출판사마다 난리도 아니었다. 어쨌든 한자어인지 아닌지까지 따져야 하다니, 소리만 따져서 사이시옷을 쓰던 옛날 규정이 차라리 덜 헷갈린다. 한자어+순우리말이라는 이유로 "극댓값"이라고 쓰고, 한자어+한자어라는 이유로 "극대점"이라고 써야 하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은가? 이럴 바에야 북한처럼 사이시옷을 아예 폐지하든가.
표기가 바뀌게 된 원리는 생각하지 않고, "있읍니다"가 "있습니다"로 바뀌었으니 "있슴"이 맞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근사값"이 "근삿값"으로 바뀌었으니 "소수"도 "솟수"로 바뀌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얼마 전에 후배 하나가 "도수(度數)"가 "돗수"로 바뀌었다고 착각했던 것도 같은 상황일 듯.
세 줄 요약.
1. 88년에 개정된 맞춤법 규정을 뒤늦게 엄밀히 적용하여 "근사값" 등등은 "근삿값"으로 바뀌었다.
2. 그러나 이 규정에 따라서도, "소수(素數)"는 여전히 "소수"로 쓴다.
3. 사이시옷 규정은 정말 이상하다.
그런데 댓글을 보니 좀 너무하다 싶은 글이 난무한다. 바로 "소수"가 "솟수"로 쓰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근거도 없는 황당한 소리를 시작했는지 모르겠는데, 너무나 자신만만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고 있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현행 맞춤법은 1988년에 당시 문교부에서 공포한 것으로, 1933년에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개정한 것이다. 이때에 바뀐 큰 변화 가운데 하나가 "-읍니다"를 "-습니다"로 바꾼 것이다. 늘 그렇듯이 주변 의견 무시하고 "-읍니다"를 고집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이건 잘 바꾼 규정 가운데 하나이다. 아무 생각 없이 "있읍니다"가 "있습니다"로 바뀌었으니, (아무 관련도 없는) "있음"마저 "있슴"으로 바뀐 걸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아진 황당한 부작용이 문제였긴 하지만.
88년 맞춤법에서 바뀐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사이시옷을 들 수 있다. 원래 사이시옷은 "소리" 때문에 정해진 것이다. 병원의 내과, 외과, 소아과 등등이 [내:꽈], [외:과], [소아꽈]로 소리나니까 된소리가 나게 하기 위해 "냇과", "욋과", "소앗과"로 쓰던 것이 개정 전의 맞춤법이었다. [소쑤]로 소리나던 素數를 "솟수"로 표기하였던 것도 이런 이유였다.
그러나 매번 사이시옷을 쓰는 것은 꽤 번거로울 뿐 아니라, 한자를 병기하면 사이시옷을 쓸 수 없고, 같은 글자를 쓰는 다른 단어에서 된소리가 나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개정 맞춤법에서는 원칙적으로 한자어에는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 쪽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옛날 책을 보면, 한자를 병기하는 경우, 냇과(內ㅅ科), 욋과(外ㅅ科)처럼 시옷을 중간에 넣는 형태로 사용하였다. 또, "냇과"와 "내국인"은 같은 한자 內를 쓰지만 한글 표기만 놓고 보면 다르다. 뒷글자를 된소리로 만드는 경우도 다르고. 따라서 표기의 편의성을 생각하면 같은 한자는 같은 글자로 나타내는 편이 좋다.
이런 문제는 한자어가 아닌 경우에도 다르지 않아서, 언제 사이시옷을 쓰고 안 쓰는지를 따져서 표기하는 것은 무척 번거로운 일이다. 한글이 한국어를 표기하는 데는 최적화되어 있는 문자 체계지만, 그렇다고 해서 철자가 모든 발음을 완벽하게 반영할 수는 없다. 이것은 세계 어느 글자든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를 할 바에야"에서 "바"는 [빠]로 소리나지만, "할부판매"의 "부"는 [뿌]로 소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작정 소리나는 대로 쓴다면, 오히려 읽기가 어려워지므로 형태를 많이 바꾸지 않으면서 소리를 반영하려면 "할 바에야"에서 "할"의 받침으로 ㄽ을 쓰든가, 훈민정음처럼 ㅭ을 써야 한다. 그렇지만 이것보다는 그냥 리을 받침을 쓰고 표준 발음을 따로 정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이처럼 철자는 어느 정도 타협을 할 수밖에 없다. 사이시옷 또한 글자의 모양은 많이 바꾸지 않으면서 발음의 변화를 나타내기 위해 도입된 타협의 산물이었다.
그렇다면 현행 맞춤법에서 제시하는 사이시옷에 대한 타협안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사이시옷은 합성어를 만드는 단어 사이에만 쓰이는데, 뒷 단어를 된소리가 되게 만들 때 받침이 없는 앞 단어 끝에 붙인다. 여기에 "콧물"처럼 [ㄴ] 소리가 덧날 때에도 쓴다.
그런데 매번 사이시옷을 쓰는 것은 번거롭지만 아예 없애기도 곤란해서, "냇과", "욋과", "소앗과" 같은 것부터 해결하기 위해 나온 방안이 바로 한자어+한자어에는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다는 규정이다. 이에 따라 "냇과, 욋과, 소앗과" 대신 "내과, 외과, 소아과"가 표준어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바꾸기가 어색했는지 다음 여섯 단어는 사이시옷을 쓰도록 한다.
곳간(庫間), 셋방(貰房), 숫자(數字), 찻간(車間), 툇간(退間), 횟수(回數)
국어학자들로서는 절묘한 타협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바람에 "솟수"로 쓰던 素數는 "소수"가 되어 버려, [소:수]로 발음하는 소수(小數)와 글로는 구별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겨 버렸다.
한편, 순우리말+한자어 또는 한자어+순우리말인 경우에는 여전히 사이시옷을 쓰도록 되어 있어서, 그 동안 "근사값", "절대값", "최대값"으로 잘 쓰고 있던 수학 용어를 "근삿값", "절댓값", "최댓값"으로 바꾸게 되었다. 맞춤법 규정만 놓고 보면 바꾸는 게 맞긴 하지만, 최근까지 이런 단어들은 전문용어로 취급하여 맞춤법 규정을 엄밀하게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예외 없이 사이시옷 규정을 지키도록 하는 바람에 어색한 표기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 바람에 교과서 수정하느라 출판사마다 난리도 아니었다. 어쨌든 한자어인지 아닌지까지 따져야 하다니, 소리만 따져서 사이시옷을 쓰던 옛날 규정이 차라리 덜 헷갈린다. 한자어+순우리말이라는 이유로 "극댓값"이라고 쓰고, 한자어+한자어라는 이유로 "극대점"이라고 써야 하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은가? 이럴 바에야 북한처럼 사이시옷을 아예 폐지하든가.
표기가 바뀌게 된 원리는 생각하지 않고, "있읍니다"가 "있습니다"로 바뀌었으니 "있슴"이 맞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근사값"이 "근삿값"으로 바뀌었으니 "소수"도 "솟수"로 바뀌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얼마 전에 후배 하나가 "도수(度數)"가 "돗수"로 바뀌었다고 착각했던 것도 같은 상황일 듯.
세 줄 요약.
1. 88년에 개정된 맞춤법 규정을 뒤늦게 엄밀히 적용하여 "근사값" 등등은 "근삿값"으로 바뀌었다.
2. 그러나 이 규정에 따라서도, "소수(素數)"는 여전히 "소수"로 쓴다.
3. 사이시옷 규정은 정말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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